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Mesa Verde에서 (1)

 

 

 

-Mesa Verde 산 길을 어느 정도 올라서 전망 좋은 곳에서 한 컷-

 

 

전날  Phoenix 공항에서 Colorado 까지 가는 도중

4 Corners라는 곳을 지나쳤다.

그곳을 지나치기 전에

이미 다녀온 아내나 처제들을 통해서 그 곳에 대해 들어서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쩌다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새로운 곳을 구경하는 데

나는 아주 탐욕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미 지나친 것을 알고 내가 아쉬움을 토로하자

이미 다녀온 아내와 처제들은 별로 볼 것이 없다고 했다.

정말 볼 것이 없는 시시한 곳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아쉬워 하는 나를 달래기 위해

위로 차원에서 한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이미 어둠은 깊을대로 깊어진 후였다.

 

그러니 어쩌랴, 볼 것도 없는데

다시 돌아가자고 강짜를 부리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먹은데다 그것은 교양인의 자세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나의 아쉬움에 동조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 군데서 네 주( Arizona, Colorado, Utah, New Mexico)의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

단지 호기심 뿐 아니라 어떤 특별한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지

정말로 궁금했다.

그러니 그 때의 기억으로 돌아가면

그 기억은 사그러들지도 않고,

나오다 만 재채기처럼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아 지금도 코가 근질거리는 것 이다.

 

저녁 늦게 호텔에 들어 어머님께서

준비해 오신 음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더블 베드가 둘 있는 방을 두 개 얻어서

두 부부가 함께 한 방을 썼다.

아버님과 어머님을 모시고 하룻밤을 보내는

성은을 제일 맏이인 우리 부부가 입었다.

 

사실 장인 장모님과 한 방에서 잔 적이 한 번도 없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없을 것이니

이런 경험은 여행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장인 장모님과 낯선 곳에서

한 방에서 하룻밤,

 

 쉽지 않은 특별한 경험을 한 것이다.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가는 도중,

호텔 로비에서 미 원주민이 직접 만든 공예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아니, 전시라기보다는 판매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둘째 동서는 무엇인가를 샀던 것 같다.

저 공예품을 만들기 위해

그것을 만든 사람이 보낸 그 인고의 시간들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음이 여린 동서는

식사를 거르면 걸렀지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다.

 

 

 

호텔을 나와 얼마를 갔을까.

Mesa Verde 입구가 보였다.

공원을 다 돌아보기 위해서는

기억이 정확하진 않아도 편도 20마일을 운전해서 가야 하는 것 같았다.

왕복이 40마일이니

총 64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다.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니었다.

국립공원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게

규모가 큰 것으로 짐작되었다.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길이 이끄는 대로 따라 갔다.

Mesa Verde라는 말은 Green Table이라는 뜻이다.

 

이 곳의 지명인 Mesa verde라는 명칭을 화두삼아

이 곳을 돌아나올 때까지 그 의미를 탐구하기로 마음 먹었다.

눈이 아직 녹지 않은 입구의저 돌산은 무엇인가

신비한 분위기를 풍겼다.

마치도 오페라의 Overture같이

전혀 알지 못하는 곳의 분위기를 미리 보여주는

맛뵈기 같은 돌산이 인상적이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이리 돌고 저리 돌아

어느 정도 오르니 이런 경치가 보였다.

고개를 오르는 중간 중간에

응달진 곳에는 눈이 쌓여 있었고,

물이 흐르던 바위의 표면엔

시간이 정지한 듯한 인상을 주며

 얼음 폭폭가 늘어붙어 있었다.

 

한참을 오르고 눈 앞이 시운한 느낌이 들었다.

차에서 나오니

3월이라고는 하지만 공기가 매섭게 찼다.

게다가 바람까지 부니

모두 차 밖으로 나오길 꺼려했다.

가슴 저 깊은 속까지 무공해 공기를

허파가 터지도록

꾸역꾸역 밀어넣었다.

여행에 지쳐 묵직했던 몸이 

마치 풍선처럼 날아오를 것 같았다.

 

중간에 넓은 분지가 보이고

그 너머에 머리에 흰 눈을 인 산이 보였다.

가슴을 뛰게 하는 눈 덮인 산이-----

 

 

 

 

 

 

 

 

산 정상에 난 길을 따라가다 보니

불에 타고 남은 나무들이 보였다.

언젠가 산 불이 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타고 남은 나무들 발 밑에는 풀들이 자라고 있었고

그 플들을 뜯어먹는 노루며, 야생 소나 말 같은 동물들이 보였다.

The Road'라는 소설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는데

새로운 생명은 다시 그 끈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길인 것이다.

끝인 줄 알았는데,

그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들이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말했듯이

우리가 그것을 놓지 않는 한

희망이 우리를 버리지는 않는 것이다.

 

길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저 산의 바위 사이에도 나이테가 생겼다.

저런 경치를 바라보며

"내 나이 몇이라고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래도 내 속에 켜켜이 쌓인 쉰 여섯의 나이테가

저 바위의 그것에 비하면 턱 없이 부족하겠지만

기죽을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

 나름대로 지나온 시간들이 모여 이루어진

나의 나이테 또한 나름 소중한 것이 아닐까.

그 누구의, 혹은 그 무엇의 나이테가 되었건

나이테는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의 축적, 견딤의 미학이

고스란히 나이테에 담겨 있으니 말이다.

나이테는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신성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낸 훈장 같은 것은 아닐런지.

 

 

 

이미 죽은 나무의 나이테.

고단한 세월을 살아낸

우리네 무모님들의 깊은 주름처럼 보였다.

저 죽은 나무의 나이테 앞에서

내 마음은 그저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은 숭고하고,

시간이 이어지는 길 또한 신성하기 때문이다.

 

 

선인장도 자라고 있었다.

 

 

 

 

 

 

 

 

 

 

겨우내 마른 풀.

그 하찮은 존재도 밟지 말라고

저런 표지판을 땅 위에 두었다.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에게 부끄러웠다.

 

나는 어떤 생명 하나 창조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나도 생명을 받은 존재이고

저 키 작은 풀들도 생명을 받은 존재이다.

내 생명이 소중한 것처럼

저들도 소중하게 지음 받은 것이다.

 

 

 

 

 

 

 

 

 

저 먼 곳의 산들은

Mesa Verde 의 높은 곳에 이르면

어김 없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이르지 못하는 미지의 곳에 대한 신비감.

 

그런 그리움 하나 정도는

가슴에 품고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늘어진 고무줄처럼 평범하고 단조로운 삶 속에서도

가끔은 팽팽한 긴장감이 생기곤 하는데

 이런 기억이 떠오른는 경우이다.

 

두 해가 꼬박 지났어도

저 눈 덮인 산의 잔영은

지금도 내 가슴을 뛰게 한다.

 

 

 

 

 

"어머, 여기좀 봐!"

길을 가다 막내 처제가 감탄 섞인 소리를 질렀다.

길 섶에 작은 꽃이 피어난 것을 발견하고 낸 소리였다.

마치 심마니가 삼을 발견하고

외치는 '심봤다'에 버금가는 감격이 어린 소리였다.

아직 눈도 녹지 않은 산 꼭대기에서

여린 생명이 피어나는 걸 보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왔다.

비록 그 꽃이 새끼 손가락 반의 반도 미치지 않는,

아주 미소한 것일지라도

분명 환희로운 생명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영 봄이 올 것 같지 않은 높은 산 꼭대기에도

희망처럼 봄은 오고 있었다.

그것도 가장 낮은 곳으로 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