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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미국 여기저기

안녕, 나의 가을이여

 

Brooklyn Botanical Garden에 다녀온 지

한 달이 훌쩍 지나버렸다.

 

허리케인 샌디 때문에 차의 연료를 구할 수가 없어

부르클린의 아파트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던 시간.

한 눈금의 개스 밖에 남지 않은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부르클린 식물원으로 향했다.

 

내가 가을을 맞고 보내는

메카와도 같은 곳.

 

마침 허리케인으로 고생한 시민들에게

무료로 공개한다고 했다.

 

 

작년에 공사를 하더니 이렇게 입구의 모습이 달라졌다.

매표소도 제법 격식을 갖추었고

왼쪽 편엔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들어섰다.

 

오른 쪽  매표소가  있던 자리에는

여러 종류의 들꽃이

늦가을 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반겨주곤 했었는데

사라지고 말았다.

어디로 갔을까,

영 아쉽고 그립기만 한

그 꽃들의 미소는------

 

작은 화단 사이를 걸으며

색색의 꽃들과 눈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계단과 마주치고,

계단을 오르면

거기 은행나무 오솔길이

벡여 미터 이어져

노랗게 가을이 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새로운 건물 때문에

올 가을 잠시 길을 잃고 말았다,

가을과 이별하러 가는 내 오솔길을.

 

늘 걷던 길이 사라진

허잔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발길을 Japanese Garden 쪽으로 돌렸다.

 

 

 

 

Japanese Garden 에도 가을이 오고 있었다.

대나무 창살 사이로

허리케인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 

가을 햇살이 사뿐히 내려 앉고 있었다.

 

 

 

 

연못 속의 비단잉어.

지붕의 그림자가 물 속에 드리워져 있고

중간에 낙엽 둘.

밝음과 어둠의 경계에 내려 앉았다.

 

 

햇살은 연못 위에 내려 앉고

시간은 멈춰 있는 것 같고-------

허리케인 샌디는 어디로 갔는지,

왔다 가긴 한 것인지.

 

바람 같은 시간.

 

 

바람은 연못 위에

허무한 물무늬를 남기고

사라졌다.

 

영원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이 가을이 그러하듯이.

 

 

연못 가로 난 오솔길을

아내가 가고 있다.

 

아내는 어떤 색깔의 가을을 맞고 있을까.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아내의 모습에서

가을을 만났다.

 

우리 삶의 가을도 조금씩 깊어지고 있었다.

 

 

 

 

 

 

단풍나무.

모양은 단풍이로되 색은 노란색이라,

노란 색의 반란?

 

 

 

 

빨갛게 익은 열매.

야트막한 언덕  너머 은행나무의 노란 잎들.

제각기 자기의 색으로

물들며 익어가는 가을.

 

나는 어떤 색으로

이 가을, 물들어가고 있는지.

 

주렁주렁은 아니더라도

빨간 열매 몇이라도

영글 수 있는 삶이면 좋으련만-------

 

 

 

어디로 갔을까

 

 

 

아내는 은행 몇 알을 주웠다.

그날 저녁에 구워 먹었다.

고소한 은행의 맛.

가을이 고소하게 내 혀 위에 감돌았다.

 

 

허리케인에 떨어진 은행잎들.

책갈피에 꽂아 두었던 은행잎의 빛깔.

언제부터인가,

기억들이 쌓이기보다는

 지워지고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내 젊은 날의 기억도 은행잎처럼

노랗게 바래가는 내 인생의 가을.

 

아무래도 가을의 색은

빨강보다는 노랑이 더 맞을 것 같다.

소멸.

 

 

아내는 벤치에 앉았다.

아내의 어깨에 내려 앉은 가을 햇살의 무게.

그 따스함 만큼의 무게를 가진 가을 햇살.

 

나는 아내에게 어떤 존재일까.

아내의 어깨 위에

얼마나 무거운 존재로

얹혀져 있을까.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아내야.->

내가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내가 이 세상을 먼저 떠난다면,

 아내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다.

 

"가을 햇살 같은 당신, 안녕."

 

아, 짧기만한 가을날의 햇살이 기울고 있었다.

 

 

철책의 그림자도 점점 길게 늘어지고----

 

 

 

 

 

 

아름드리 나무가 뿌리 채 뽑혀 있다.

쓰러진 크고 굵은 나무의 뿌리는 한결 같이

부실하다.

 

뿌리 깊은 나무.

 

 

 

분수대 저 쪽의 아내.

바지가 은행잎의 색깔을 닮았다.

 

 

 몇 몇 꽃들은 활짝 웃으며

내게 눈짓을 보냈었다.

 

 

 

장미 가든에는

여러 종류의 장미가

허리케인이 지나갔어도

떨어지지 않고 살아남아

이렇게 환호하고 있었다.

 

 

 

 

 

 

 

누굴까

장미  한 송이를 꺾어 저 여인상의

손에 얹어놓은 이는.

 

여인상은

꽃을 가져다 놓은 사람의

향기를 맡는 것은 아닌지.

 

 

 

 

빛과

소리가

만난다.

빛의 소리.

 

 

무슨 꽃이지?

꽃 이파리 끝 언저리가

아주 조금 빨갛게 물이 들었다.

 

 

수선화 언덕.

봄이면 저 나무 주변으로

노란 수선화가 지천으로 피어난다.

 

 

 

나무 담장 사이로 빠져나온 햇살.

소나무 잎.

낙엽.

 

이 모두가 낮은 곳으로 향하는 계절.

 

 

 

 

 

 

 

 

가을이 쌓였다.

드나든 지 오래된 문.

닫힌 문,

닫힌 문도 문이라 할 수 있을까.

 

내 마음의 문.

 

 

향기 가든에 들어섰다.

라벤더.

그 너머의 아내.

 

 

민트가 벽 틈 사이에서 자라고 있다.

 

 

가든을 나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꽃에게 인사했다.

안녕, 꽃아.

 

꽃과 작별하는데

바람에 낙엽 한 무더기가

우수수 떨어졌다.

 

 내게 주어진 가을 중 하나가

지고 있었다. 

 

안녕,

나의 가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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