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 떡 본 김에 제사 지내기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 떡 본 김에 제사 지내기

 

이틀 전에 박스 하나가

우리 아파트 문 앞으로 배달이 되었다.

흔히 말하는 언박싱을 해보니 세련된 스타일의 스니커 한 켤레가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스니커를 손으로 들어보니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직접 스니커를 신고 몇 걸음 걸었는데

발을 들 때 무게를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이 보통 운동화보다 빨라서 흠칫하고 놀랐다.

운동화의 바닥이 전에 신던 운동화보다 두꺼워서였다.

걸어 다니는 용도롤 쓰기에는 

걸음걸이가 자칫 어색해질 수 있을 수도 있는

달리기를 위해 최적화된 운동화였다.

 

이 운동화는 둘째 딸이 보냈는데

지난주에 있었던 5KM 달리기 대회에서

내가 60대 참가자 중 1 등을 한 사건에 대해

딸내미가 격려 차원에서 아빠에게 하는 선물의 성격을 띤 것이다.

 

그런데 선물의 성격이 그리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솔직한 나의 마음이다.

둘째는 몇 달 전에도 나와 아내에게 운동화 한 켤레씩을 선물한 적이 있었다.

그 운동화를 신고 아내와 나는 순수하게 달리기를 했고,

달리기는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런데 둘째 딸이 아내와 나를 5KM 달리기 대회에

참가자로 신청을 해 놓은 까닭으로 마지못해 달리기 대회에 참가를 해야 했다.

 

아내와 나는 둘째 딸이 던진 '미끼'를 문 것이다.

 

이 번에는 운동화를 선물로 보내면서

이런 메시지도 함께 보냈다.

"아빠, 이 운동화는 평소에 걸을 때는 사용하지 마세요.

부상의 우려가 상당히 있어요.

1/2 마라톤이나, 마라톤을 뛸 때만 신으세요."

 

이윽고 나는 딸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열심히 달려서 1/2 마라톤과 마라톤에도 한 번 도전해 보라는 게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나는 봄가을에 한 번씩은 혼자서 1/2 마라톤을 뛰지만

마라톤에 도전할 생각은 하나도 없다.

너무 힘든 건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나의 지론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미사를 다녀오는데

날이 흐리고 온도도 그리 높지 않아서

10KM 달리기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꼭 뛰려는 마음보다는

새로운 운동화를 신고 성능을 시험하려는 마음이 더 컸다.

왜 우리 속담에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120 스트릿에서 시작해서 52 스트릿까지 갔다가

우리 집이 있는 116 스트릿까지 돌아오면 대충 10 Km가 되었다.

새 운동화를 신고 10 Km의 첫 발을 떼는 순간,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발이 지면에 닿을 때 그 푹신함이란-----

 

그렇게 나의 10 Km 달리기는 아주 상쾌한 페이스로 시작되었다.

내 발이 공처럼 통통 튀어 오르는 기분으로

초반은 아주 명랑하게 달릴 수 있었다.

 

이어폰에서는 말러의 교행곡이 흐르며

혼자 달리는 단순함과 무료함을 달래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반환점인 52 스트릿을 돌아

결승점이 있는 반대 방향으로 뛰면서 문제가 생겼다.

맞바람이 부는 것이 아닌가.

 

반을 조금 더 넘기긴 하였으나 슬슬 피로해지는 시간대에

맞바람은 정말 이겨내기 어려운 장애가 되었다.

처음 3 마일은 마일 당 8 분 20초 정도의 페이스로 뛰었는데,

호흡이나 몸에 별 무리가 없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반환점을 돌면서 사라졌다.

귓등을 스쳐가는 바람소리만 요란하게 귀를 자극했다.

바람을 거슬러 뛰는 내 몸과 다리가 조금씩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마일 당 속도로 9 분에 가까워질 정도로 바람의 저항이 거셌다.

 

그리고 시계가 작동을 멈추었다.

배터리의 용량이 다 되었다

내 몸의 배터리도 점점 방전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80 스트핏에 가까이 오자

이어폰의 음악 소리가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면서 들리기 시작했다.

다시 힘을 회복하면서 달렸다.

 

정확한 기록은 모르겠지만

오늘 10 Km 달리기의 기록은 54 분에서 55 분 사이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반환점을 돌기 전까지 나는

그렇게 달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의 신체적 능력과

새로 선물 받은 운동화 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반환점을 돌아 뛸 때

내 앞을 가로막은 바람의 저항을 느끼면서

달리기 전반부에는 바람이 내 등을 밀면서 내게 힘을 보태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게 힘이 되었던 바람은

자칫 잊거나 무시하면서 지나치기 쉽지만,

나를 거슬러 부는 바람의 저항은 유독 견디기 힘이 든다.

 

오늘 달리기를 마치고,

내가 잘 느끼지 못하지만

내 삶의 달리기에서 알게 모르게 내 등을 밀어주는

보이지 않는 손길들을 느끼고 묵상하려 한다.

 

오전 내 흐리고 빗발이 살살 뿌리던 날씨가

조금씩 개기 시작한다.

오늘도 아름다운 날이다.

 

 

Two days ago, a package was delivered to the front door of our apartment. Upon unboxing it, I found a pair of stylish sneakers inside. When I picked up the sneakers, they were almost weightless. I tried them on and took a few steps, and I couldn’t feel their weight at all. However, when my feet touched the ground, it was quicker than usual, startling me. The soles of these shoes were thicker than those of my previous sneakers.

They were optimized for running, which might make my walking gait somewhat awkward.

These shoes were sent by my second daughter, as a gift to encourage me after I placed first among the 60+ participants in a 5KM run last week. However, my honest feeling is that the gift doesn’t seem entirely pure in intention.

A few months ago, she had also given my wife and me a pair of running shoes each. My wife and I innocently took up running, which then became a part of our lives. But, since my second daughter had registered my wife and me for the 5KM race, we reluctantly participated.

My wife and I had taken the bait.

This time, she sent the shoes with this message: “Dad, don’t use these shoes for everyday walking. There’s a significant risk of injury. Only wear them for half-marathons or marathons.”

It soon dawned on me what her real intention was. Clearly, she wanted me to train hard and try running half-marathons and marathons.

While I do run half-marathons alone once or twice in spring and fall, I have no intention of attempting a full marathon. My principle is that something too strenuous isn’t real exercise.

This morning, after returning from Mass, I noticed the day was overcast and not too warm, so I decided to run 10KM. More than wanting to run, I was eager to test the performance of the new sneakers. After all, we have a saying: “Strike while the iron is hot.”

Starting at 120th Street, I ran to 52nd Street, then back to 116th Street, where my home is, making it roughly 10KM. As I took the first step in the new shoes, I felt like I was flying. The cushioning when my feet hit the ground was incredible.

My 10KM run began at a very refreshing pace. My feet felt like they were bouncing off the ground like a ball, making the initial part of the run very cheerful.

With Mahler’s symphony playing through my earphones, I was soothed from the simplicity and monotony of running alone. But, as I turned at the 52nd Street turnaround point, trouble arose: a headwind.

Having run a bit over halfway and starting to feel fatigued, the headwind became a difficult obstacle to overcome. I had been running the first three miles at a pace of about 8 minutes and 20 seconds per mile, without much strain on my breathing or body.

As I rounded the turn, the music from my earphones faded. All I could hear was the loud wind rushing past my ears. My body and legs started feeling heavier, with my pace slowing to nearly 9 minutes per mile due to the wind’s resistance.

Then my watch stopped working – the battery had died. I also felt my energy draining.

Approaching 80th Street, the music in my earphones began to come back intermittently, giving me a second wind.

Although I don’t know my exact time, I estimate my 10KM run took between 54 and 55 minutes. Before reaching the turnaround point, I believed my running ability and the new sneakers were responsible for my performance.

But as I ran against the wind on the return, I realized that the wind had been pushing me along during the first half of my run, adding to my strength.

The wind that had helped me was easy to overlook or dismiss, but the wind’s resistance on my return was tough to endure.

After finishing today’s run, I reflected on the unseen forces in my life’s journey that silently push me forward, even though I might not always notice them.

The weather, which had been drizzly all morning, began to clear up bit by bit. Today is another beautiful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