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망초 흐드러지게 핀 뜰에서 - 이영주 선생님을 기억하며
올봄 에스터 씨의 베가 하우스 뒤뜰에는
누가 심지도 않았는데도
수선화가 피었다 진 자리 뻬고는
연보랏빛 물망초가 뒤뜰 정원을 빼곡히 채웠다.
3월에 다녀왔을 때는 수선화가 뒤뜰을 밝혀주었을 뿐
이렇게 연보랏빛으로 뒤뜰이 덮일 줄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기적처럼 피어난 물망초들로 해서
베가 하우스의 뒤뜰은 흡사 모네가 그린 꽃밭 그림을 보는 것처럼
다정하고 차분한 느낌을 내게 선물해 주었다.
'나를 잊지 말라(forget me not)'는 꽃말을 가진 물망초는
자연스레 두 해 전 가을,
베가 하우스에서 반나절을 함께 보냈던
이영주 선생님을 기억의 갈피 속에서 소환해 주었다.
두해 전 가을이 깊어가는 베가 하우스에
아내와 나는 이른 아침에 도착을 했다.
새벽바람부터 서둘러 집을 떠나 베가 하우스에 도착하니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기척을 듣고
이영주 선생님과 에스터 씨가 앞 문을 열고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막 해가 앞 산 머리 위에 감긴 구름 사이로 솟아오를 때였다.
장작불이 타는 난로 위에서는
고구마가 익어가고 있었다.
이영주 선생님은 특별히 베가 하우스를 좋아하셔서
에스터 씨와 꽤 자주 그곳에서 하루나 이틀을 묵으셨다.
우리가 이태 전 가을에 그곳을 찾았을 때에도
전 날 도착해서 하루를 지내시고 우리를 맞아주셨던 것이다.
10여 년 전에 폐암 진단을 받으셨고,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됨에 따라
수술과 시술을 여려 차례 받으셨지만
만날 때마다 선생님의 입가에서 웃음을 놓치고
못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최근 10년 동안 육체적인 아픔이 그분을 떠난 적이 없었지만
입가의 미소 또한 떠나지 않았다.
육체적인 아픔이 자신을 짓누를 때
사람들은 자연스레 얼굴을 찡그리고 신음을 내뱉는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사회적으로
너그럽게 받아들여진다.
누구나 고통을 표현하며 아플 자유도 있고,
동시에 고통을 참고 미소 지을 자유도 있는데
선생님은 고통 속에서도 미소 지을 자유를 선택하셨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영주 선생님을 '자유인(自由人)'이라고 부르고 싶다.
아픔을 표현할 자유도,
아픔을 딛고 미소 지을 자유 가운데
미소 지을 자유를 선택한 선생님은 진정한 자유인이다.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선생님처럼 고통 가운데서 미소를 선택하는 자유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커피와 함께 따뜻한 아침 식사를 하고
아내와 나, 그리고 선생님은
베가 마운틴 로드를 따라 산책길에 나섰다.
가을이 깊은 산에서는 무슨 열매 익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언덕길을 내려가다
삼거리를 만났을 때 선생님은 우리에게
더 멀리 갔다 오라며 본인은 발길을 돌리셨다.
숨이 차오르니 더 빨리, 그리고 더 멀리 가실 수 없으니
우리더러 더 갔다 오라고 등을 떠미셨다.
당신을 위해 보조를 맞추어 달라고 하지 않으시고
우리는 우리의 걸음을 걸으라고
당신은 온 길로 돌아가셨다.
자신과의 동행을 바라지 않고
타인의 자유를 존중해 주기 위해서
본인은 고둑한 자유를 즐기시는 분이 아니었을까?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혼자 있음의 자유를 씩씩하게 즐기셨던 자유인, 이영주 선생님은
지난 4 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
사랑하는 세 딸과 가족, 친구들과 그리고 벚꽃 아름답게 피어나는 세상과
이별을 하셨다.
앞으로 걸어가면 더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우리 등을 떠 미시고
본인은 등을 돌려 처음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셨다.
이영주 선생님을 기억하며
내가 선생님의 명함을 만들어 드린다면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선생님은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의 멤버인 세 딸의 어머니이자
세 권의 수필집을 낸 수필가이다.
그리고 미국에 오기 전에는 신문기자로도 활동하고 출판사도 운영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만드는 선생님의 명함에는
이렇게만 적고 싶다.
'자유인' 이영주
아 명함을 선생님께 보여드리면
선생님은 명함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하실 것 같다.
기실 자유인에게 무슨 명함이 필요할까.
그리고 돌아가실 때 모자람 없이 피던
벚꽃 같이 흰 미소만 지으실 것 같다.
베가 하우스에 핀 물망초를 바라보며
자유인을 그리워하는 것도 내 자유라며
잠시 나도 자유인이 되어보았다.
물망초가 바람에 일렁거렸다.
올 처음 핀 물망초는 내년에도,
그리고 매 년 피어날 것이다.
그리운 사람을 기억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