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오후에 올해 처음으로 달리기를 했다.
우리기 살고 있는 116가에서 45가까지
boardwalk 위를 달렸다.
바람이 불어서 파도가 높이 일었는데
파도의 분말이 바람에 하얗게 날렸다.
지난해 5 월 15 일에 half marathon을 뛴 이후에는
실내에서 가끔 2-3 마일을 달린 것이 달리기의 전부인지라
사실 어제 달리기를 하기 전에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처음에는 3-4 마일 정도만 뛰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뛰다 보니 욕심이 생겨서 6.5 마일 정도를 달렸다.
평균 시속도 1 마일에 10 분 정도 걸렸으니
그리 나쁜 성적은 아닌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최근에도 실내에서 달리기를 했지만
무엇보다도 풍경의 변화가 없는 지루함 때문에
3 마일 이상 달리기에는 너무 꾀가 났다.
어제는 지영이가 선물한
조깅 셔츠와 바지를 입고 딸렸다.
그 선물은 선물이기보다는 나에게는
기분 좋은 압력 같은 것으로 느껴졌다.
지영이는 자기 생일에 half marathon을 뛰는 것을
전통으로 하고 있다.
작년에 반려견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을 때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 전부터 해오던 달리기를 시작했고
그것은 아픈 마음을 위로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도 딸아이의 슬픔에 동참하고 또 위로하는 마음으로
함께 half marathon을 뛰었다.
딸아이의 집을 출발해서 우리 집까지의 거리가
대충 Half Marathon의 그것과 엇비슷했다.
세상 무엇보다도
딸을 위한 가장 소중한 선물이 되었을 것 같아
지금도 그날의 달리기의 기억은 나를 뿌듯하게 만들어준다.
오래 달리는 일이,
또 오래 달리기 위해서 가끔씩 달리기를 해야 하는 일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아도
함께 달리는 일이 딸에겐 아름다운 선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어제 나를 바람 부는 밖으로 나가게 했다.
그리고 특별히 1월부터 South Carolina에 있는 해병 훈련소에서
신병들을 훈육하느라 땀 흘리고 있을
막내아들을 생각했다.
'Solidarity(연대)'라는 단어를 나는 가끔
머릿속에 떠올린다.
내가 어려움을 겪으며 누군가 고통 속에 있는 이를
기억하며 현재를 살아내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그리고 그런 정신과 마음은 서로 이어지는 것이라 나는 믿는다.
신앙도 그런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연대와 공감 없는 신앙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기도가 꼭 큰 소리를 내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힘들 때 어려움을 겪고 있을
지상의 누군가를 생각하는 일 또한 기도라고 생각한다.
마음으로 연대하고 공감하는 일이
나비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기적인 것이다.
별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10 킬로 미터 이상을 뛴 것이 조금은 무리가 되었던 것 같다.
뻐근한 다리 때문에 밤 새 몇 번이나
잠에서 깨어나야 했다.
그러나 여덟 달 만에 처음으로 긴 거리를 뛰어냈다는 뿌듯함은
다리의 피곤함은 오히려 상쾌함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올 5 월, 지영이의 생일에
또 한 번 작은 선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슴 설레는 아침을 맞고 있다.
나 아직 '싸라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