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ia 국립공원에서 해맞이- 1월 2일
겨울의 Acadia 국립공원에서는 할 일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해돋이 시간도 늦고, 해가 기우는 시간이 너무 이르니
햇빛이 있는 동안 다녀야 하는데
Cadillac Mountain에도 차로 오를 수 없어서
오후 다섯 시 이후에는 꼼짝없이 숙소에 머물러야 했다.
황진이
冬至ᄉᄃᆞᆯ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
春風 니불 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의 시조 생각이 났다.
혼자 지내는 동지의 밤이 얼마나 길고 외로웠을까?
그 긴 밤을 반 토막 내어 저축했다가
정말 필요한 순간에 다시 쓸 수만 있다면-----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메인의 겨울밤은 짙고 어두웠다.
연말연시라 그런지 번화가의 상가도 95%는 문을 열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반짝이며 거리를 밝히기 했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거리는
흡사 이야기 속 유령의 마을 같이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새해 첫날과 첫밤을 보내고
일어나 보니 새로이 시작한 하루는 이미 지워졌고
또 새로운 하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지만
하늘에는 구름이 제법 덥혀 있어서
해의 쌩얼을 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아내는 일출을 보려는 의지를 꺾지 않고
Cadillac Mountain에 가보자고 보챘다.
나 같으면 벌써 포기를 했을 텐데
아내의 사전은 불량품이다.
아내의 사전에는 아무 이유 없는 '포기'라는 단어는 없기 때문이다.
아내는 김여사
나는 김기사가 되어
어둔 동짓달 새벽길을 떠났다,
오직 일출을 보겠다는 생각 하나로.
그러나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그날도 제 자리에서 꿈쩍도 않고 우리를 막아섰다.
차 몇 대가 입구 앞에 산으로 행하는 도로 앞에 주차되어 있었고
인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산 정정에서 일출을 보고 싶으면 더 일찍 와
걸어서 꼭대기까지 올라야 했다.
아쉬운 마음을 머금고
산 아래를 한 바퀴 돌아 다시 Bar Harbor에서 해를 맞았다.
영하의 날씨는 아니었지만 카메라를 든 손이 시렸다.
한 여인이 조깅을 끝내고 바닷물 가장자리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위에 입었던 바람막이 재킷을 훌훌 벗었다.
설마 했더니 그 여인은 스트레칭을 마치고
마샬 아트의 기본동작 같은 것을 몇 가지 하더니
바닷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물속에 몇 차례 몸을 담그고 빼더니
다시 밖으로 걸어 나와 옷을 입고
총총히 사라졌다.
아침 해를 맞는 것보다도
그 여인이 겨울 바닷물에 들어가는 장면이
더 신비롭고 신선했다.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Jessup Path'라는 곳에 들렸다.
'JessupPass'는 자연산 자작나무가 우거진 숲 속에
산책길이 있는 곳이다.
전에도 한 번 온 적이 있었는데
표지판 하나가 길을 찾는 유일한 역할을 하기에
차를 타고 찾아가느라 애를 먹었다.
이 번에는 'Jessup Path'로 통하는 길도
산 정상에 이르는 도로처럼
1 킬로 미터 전부터 막혀 있었다.
우리는 걸어서 그곳까지 갔다.
차가 다니는 도로가 텅 비어서
도로 중간의 노란 선을 따라서 활개를 치며 걸었다.
왕이 되어 행차를 하는 것 같이 어깨가 으쓱거리고,
헛기침을 하고 싶어졌다.
걸어서 가니 작은 표지판이 자연스럽게
내 눈으로 들어왔다.
작은 오솔길이 그 옆으로 숲으로 이어져 있었다.
차를 타고 빠르게 지나가면 보이지 않건 것이
천천히 걸으니 보였다.
빠르게 성급히 걸으면서
얼마나 많은 소중한 것들을 놓치며
지금까지 살아왔을까?
자작나무의 잎들은 모두 졌다.
자작나무의 노란 이파리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 나의 로망이다.
그런데 한 번도 노란 잎이 충만한 자작나무 숲을
경험한 적이 없다.
해가 드는 숲의 자작나무는 은빛이 났다.
그래서 자작나무 하면 노란색보다는 은색으로
나의 뇌는 반응을 한다.
나무와 나뭇잎.
나는 영원과 순간,
본질과 허상.
부질없는 사유를 하며 숲길을 걸었다.
은색의 기억은
산책 뒤에 이어진 집으로의 귀환에 걸린
8 시간 30 분의 퀴퀴한 어둠을
밝게 채색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결국 여행은 목적지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과정이며 여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