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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ia 국립공원에서 해맞이 - 12 월 31 일

12 월 31 일,  오전 9 시 15 분,

우리는 메인 주의 아카디아 국립공원을 향해

장도에 올랐다.

자동차의 GPS는 우리 집에서 Bar Harbor에 있는

숙소까지의 거리를 500 마일이라고 알려주었고

별일 없으면 8 시간 하고도 30 분이 더 걸린다는 사실도

친절하게 보여주었다.

 

500 마일을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900 킬로 미터이다.

우리 집에서 메인 주의 숙소까지 편도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하는 거리의 두 배가 훌쩍 넘는다는 사실은

출발선 앞에 선 내가 주눅 들기에 충분조건을 채우고도 남았다.

 

아내는 새 해의 첫 해를 메인 주의 캐딜락 산 정상에서 맞고 싶어 했다.

Cadillac Mountain은 Acadia 국립공원 안에 있는 산인데

정상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며 펼쳐지는

풍경에 우리 입을 벌어지게 한다.

 

그리고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장엄하다는 수식어까지 덧붙여야

비로소 제대로 된 표현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미학적인 면과 함께

Cadillac Mountain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비록 해발 465 미터 밖에 되지 않는 고도를 가지고 있지만

동부 해안에서 제일 높아서

여기서 미국에서 제일 먼저 뜨는 해를 바라볼 수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아내는 이 점을 고려해서

새해 첫 해를 Cadillac Mountain에서 만나기로

점심(點心:마음에 점을 찍음)을 한 것이다.

그녀의 마음은 아름답고 고상하다고 아닐 할 수 없지만

그에 따르는 고통(?)이 수반되는 것이 문제였다.

 

그 고통은 여행에 따르는 경비와 같은 물질적인 면과

여덟 시간을 넘게 운전해야 하는 육체적인 것 모두를 포함한다.

 

아내는 이미 우리가 묵을 숙소를 정했다.

아내가 이용하는 Hotel.com에서

이들 동안 무료로 묵을 수 있는 혜택을 제공받기로 한 까닭으로

먹는 것과 운전기사의 의지만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게

아내의 생각이었고 또 그것은 의지이기도 했다.

 

김여사와 김기사.

 

이런 경우 우리 부부의 관계는 김여사와 김기사의 그것이 된다.

아내는 내 식성을 고려해서

밥솥과 간단히 몇 가지 반찬을 준비했다.

그리고 라면도 한 끼를 책임질 양식으로 챙겼다.

내가 양식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으므로

기사 비위 맞추기 차원에서 그리한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Bar Harbor 근처의 많은 상점과 식당이

연말과 연초에 문을 닫았기 때문에 이런 준비 없었으면

애를 먹을 뻔했다.

 

우리가 출발할 때부터 안개가 짙어지더니

가는 길 내내 안개가 우리를 에스코트했다.

보스턴을 지나고 메인 주에 가까워지면서

비로소 안개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오후 네 시가 되자 어둠이 덮였다.

메인 주에 들어서고도 숙소까지 가는데

네 시간이나 걸렸다.

지루한 어둠을 뚫고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다섯 시 반이 넘었다.

정말 어둠 속으로의 긴 여로였다.

 

"피곤해요?"

김여사가 물었다.

"아니요."

김기사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실제로 그리 피곤하지 않은 것이 신기했다.

 

아내가 출발하기 전에 밥솥에 한 밥과

반찬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것은 마치 학교 다닐 때 도시락을 먹는 기분이었다.

식고 약간 뭉친 흰 밥맛은 기가 막히게 맛이 있었다.

김소운 선생의 수필 중, '걸인의 찬 왕후의 밥'이라는 표현이 있지만

우리가 먹은 저녁은 말 그대로 왕과 왕후의 밥과 찬,

그 이상이었다.

 

이번 김여사가 제안한 여행에 약간의 불만이 있었지만

이 한 끼 식사는 간사하게도 내 마음을 돌려놓았다.

김여사의 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는 말은 

사실임을 다시 깨달으며

행복한 저녁 한 끼를 먹었다.

 

새해 첫날 아침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자고 나면 해가 뜰지도 모른다는 요행을 바라며

넉넉하고 포만감 가득한 잠 속으로

한 해의 마지막 밤 속으로 깊숙이 가라앉았다.

 

예전에 Cadillac Mountain 정상에서 찍은 일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