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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의 일기

흐린 날의 일기 -클로뎃의  무화과 케이크

1.

어제에 이어

아침부터 안개가 끼고

그 짙은 안개의 입자가 서로 부딪치며

작은 물 알갱이를 지상에 흩뿌리고 있다.

 

미국에 돌아오기 이틀 전부터

오슬오슬 춥다가 열이나기도 하며

몸살의 전조 증상이 나타났다.

 

제주에서 한 달 살이를 마치고 서울에 오니

우릴 반겨주는 건 추위였다.

거의 섭씨 30도 차이의 온도에

갑자기 적응하는 것이

내 몸에 무리가 되었던 것 같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처음으로 한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여부 검사였다.

간이 검사이긴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지는 않았다.

약간의 근육통과 밭은기침이 증세의 전부이기는 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도 귀찮고

무엇을 먹는 기쁨도 사소한 일이 되고 말았다.

(나는 먹는 걸 엄청 좋아한다.)

 

2.

아침에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건물에서

아주 가까운  카페 'Claudette'에서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집에 와서 아내와 나누어 마셨다.

 

카페 주인 클로뎃은

케이크 만드는 걸 좋아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별히 바나나 브레드와 무화과 케이크의 맛은

내 입에 착 달라붙는다.

오죽 맛이 좋으면

내 성격에 값이 좀 비싸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즐겨 이 케이크를 산다.

 

내가 아침에 출근하러 전철역으로 걸어갈 때

카페를 열기 때문에 거의 매일 주인인 클로뎃과 아침 인사를 나눈다.

특별히 클로뎃에게 바나나 브레드와 무화과 케이크의 맛에 대해

최상급의 칭찬을 인사에 곁들일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클로뎃은 감격해마지 않는다.

 

커피를 사 가지고 나오려는데

갑자기 클로뎃이 나를 불렀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클로뎃에게 방해되지 않으려

인사도 거르고 조용히 가게를 빠져나오려는 차였다.

 

그녀는 우리가 한국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아내와 슈퍼마켓에서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기에

아내를 통해 우리의 여행 소식을 알고 있었다.

 

그때 아내는 비즈니스를 하는 클로뎃을 위해

순번을 자진해서 앞으로 바꿔주었다.

 

클로뎃은 나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며

케이크 진열대에 놓인

무화과와 호도 케이크를 하나 봉투에 담아주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무화과 케이크는 그만 만들지도 모를 거라고 말했다.

 

사실 아내와 나는 여행 전에 몇 번을 클로뎃에 가서

무화과 케이크를 찾았지만 있어야 할 자리는

다른 종류의 케이크가 차지하고 있었다.

 

클로뎃은 그때마다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좋은 무화과를 고르기도 힘이 들거니와

와인에 무화과를 담그고 숙성하는 시간이 꽤 걸리는 등

제품 생산을 하는데 생기는 어려움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한 달쯤 지나서야

무화과 케이크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무화과 케이크가 내는

그 깊고 그윽한 맛의 연유를 알아차리는 순간

나는 클로뎃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오늘

클로뎃은 나와 아내에게 무화과 호두 케이크를 선물한 것이다.

여행을 다녀온 우리를

클로뎃은 은근히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고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을 위해 연주를 했다는

그 옛날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처럼

혹시 그녀가 귀찮고도 시간이 걸리는 케이크 만드는 일을

자신이 만든 케이크의 진가를 알아주는 

나와 아내를 위해 특별히 한 것은 아닐까?

 

백아가 달빛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뜯으면

종자기는 달빛을 바라보았고,

백아가 강물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뜯으면,

종자기는 강물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지음(知音)이라고 해서 

거문고 소리만 듣고도

연주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마음이 통하는 경지가 참으로 아름답다.

 

클로뎃이 만든 케이크를 먹으며

클로뎃의 마음과 교류할 수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날은 흐려도 

마음은 밝은  아침.

 

3.

오후엔 Boardwalk 산책.

사람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음.

우리 집 길 건너편 폐허가 된 건물의 철거작업 지행 중.

아마도 푸드코트가 있었던 곳 같은데

Hurricane Sandy 때문에 피해를 입고

방치된 것 같다.

 

너무 쉽게 사라진다.

 

바닷속에는 서핑을 즐기는 사람 대 여섯.

가끔씩 자전거 타는 사람과 조깅하는 사람들.

길 고양이 수가 꽤 많이 눈에 뜨임

누군가가 그들에게 먹이를 주고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