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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살이 -큰지그리오름-고사리, 쿠사리

큰지그리오름-고사리, 쿠사리

교래 천연 자연림 공원에 다녀왔습니다.

 

두 시간 반 정도 숲 속을 걸으며

자연과 함께 한 그 시간을 떠올리면 

숲 속에서 느꼈던 그 서늘함이 지금도

피부에 그대로 재생되는 것 같습니다.

 

숲 속  무릎 아래쪽에는

고사리들이 8할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에도 똑 같이 생긴 고사리과 식물이 있는데

이곳의 고사리와 흡사랍니다.

 

고사리는 잎이 나기 전에 돋은

순을 먹는 거라고 아내가 말해주었습니다.

우람한(?) 잎이 있는 고사리 사이사이에

아기 고사리가 눈에 띄었는데

고사리 순 같은 것이 있어서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바로 이걸 먹는 거지?"

 

"그게 무슨 고사리 순이야?"

 

아는 척하려다가 고사리 때문에 쿠사리(핀잔의 일본말)를 들었습니다.

 

참 눈썰미가 없는 나입니다.

얼굴이나 사물 인식 장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길 가다가 노란 꽃만 보면 유채꽃이 있다고 반가워하면

"저게 무슨 유채꽃이야?" 하며

눈썰미 없는 나를 타박하는 아내입니다.

이렇게 눈썰미 없는 내가 아내를 만난 걸 보면

사람 보는 눈이 전혀 없는 건 아닌 것도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내의 타박이 획기적으로 줄어듭니다.

잘못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긋나긋해집니다.

 

곶자왈을 걸으며

빨간 열매 몇 개가 달린 식물을 보았습니다.

 

"와, 저거 산삼같이 생겼다."

 

아내는 타박하는 대신 '천남성'이란 

그 식물의 이름을 내게 알려 주었습니다.

이파리는 정말 산삼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나는 '천남성'을 첫남성으로 잘못 들었습니다.

 

내 머리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유치한 이야기 하나가 만들어졌습니다.

 

옛날 옛날 아리따운 아가씨가

멋진 남성 하나를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이 첫남성은 마음이 변해

이 아가씨 곁을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아가씨는 그리움과 원망이 뒤섞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아가씨가 숨진 자리에서 

풀이 자라기 시작했는데

그녀의 마음을 닮은 붉은 열매가 열렸습니다.

그녀의 원망이 열매가 되어 맺혔던 것이지요.

그 식물은 독성이 강해서 사약의 원료로 쓰였다고 합니다.

 

결국 이 '천남성'을 원료로 만든 사약을 받고

뭇남성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숫자가 천 명이 이르렀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천명의 남성이 이 사약을 받고 죽었다고 해서

'천남성'이라는 이름으로 '첫남성을 바꿔 부르게 되었습니다.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또 쓸데없는 말 한다고 쿠사리 들을 게 틀림없습니다.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건,

아마도 천 명의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천으로 땅에 깔려있는 고사리와

그 사이에 간간히 붉은 열매를 맺은

천남성과 눈 맞추며 다녀온 큰지그리 오름.

 

누구를 미워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며

사랑만 하며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자꾸만 천남성의 빨간 열매가 눈 앞에 어른거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