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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기- 용두암 사진산책,오메기 떡 두 개

제주 일기- 용두암 사진 산책, 오메기 떡 두 개

두터운 구름이 끼었지만

어제 하늘은 눈이 부시게 푸르렀다.

완벽하지 않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날씨였다.

 

산책하기 딱 좋은 날.

 

어제 산책길에도 목적지가 있었다면

용두암이었다.

용두암에서 처음으로 사진을 찍은 것이 40 년이 되었다.

1984 년 10월 말에서 11 월 초,

신혼 여행길에서였다.

 

그리고 아내가 들리고 싶어 하던 곳이 있었는데

'바르나시 책골목'이라는 곳이었다.

인도와 명상에 관한 책과 인도의 차를 파는 곳이었다.

그러니 어제 산책의 주제가 용두암이라면,

당연히 부제는 '바르나시 책골목'이 될 것이나

이 모든 것이 천천히 걸으며 시간 보내는 일의 곁가지에 불과하다.

 

호텔을 나와 용두암 쪽으로 발걸음 떼었다.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꽤 너른 공터가 있었는데

유채꽃이 피어 있었다.

무슨 까닭인지 나는 유채꽃을 좋아한다.

아마 노란색과 초록색이 어울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유채가 발산하는

청초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해 보지만

딱히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냥 이유 없이 나는 유채꽃이 좋다.

유채꽃은 미시적으로 볼 때보다 거시적으로 보아야 아름답다.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공항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서 아래쪽으로 길을 따라 내려갔다.

길 옆에 있는 집의 정원에서 빨간 칸나와 또 노란 칸나를 보았다.

 

11월의 칸나

제주는 칸나가 한 여름에 게으르게 피는 꽃이라는 것을 잊게 해 주었다.

 

큰길을 걷다 보니 마을길이 보였다.

마을의 좁은 길을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찾아 제주를 찾는다.

나도 그렇다.

그러나 제주의 자연만큼 제주가 간직한

흘러간 시간들과 만나고 싶었다.

 

길 가의 빈터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 두 그루.

소나무와 야자나무는 제주의 모습을

한라산을 배경으로 내게 보여 주었다.

 

우뚝우뚝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건물이 아니라

키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제주의 마을엔

아직 지나가지 못하고 머물고 있는 시간들이 고여 있었다.

제주의 골목길엔 아직도 내가 한국에 있을 때 경험했던

60-70년대 시간이 자연스레 남아 있었다.

감나무가 집 앞에 있고 나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감도 달려 있었다.

 

어느 약방 앞엔 사람들이 사서 마신 뒤

두고 간 '구론산' 같은 활력 드링크 빈병이 놓여 있었다.

'구론산'이 내 기억 속에서 다시 부활한 것이 얼마만일까.

골목길을 지나며 죽었던 기억 세포들이 재생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용담 공원에 이르렀다.

출렁다리를 건너가니

군밤 파는 할머니가 잠복하고 있다가

불쑥 아내에게 군밤을 건넸다.

얼떨결에  아내는 그것을 받아먹었다.

아내는 미끼를 물었고 할머니는 5000원을 낚았다.

 

군밤을 까먹으려 바다 쪽으로 내려갔다.

바다를 끼고 둘레길이 이어지고

길 하나 사이를 두고 식당과 횟집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너른 바다를 바라보며

가슴이 트이는 느낌을 받다가도

다닥다닥 붙어있는 횟집과 식당 간판이 서둘러 그 느낌을 막아버렸다.

 

이런 걸 발전이라고 하는 걸까?

 

개발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개발(開發)일까,

아니면 순수한 한글의 개발일까.

 

둘레길을 따라 용두암으로 발을 떼었다.

40 년 전에는 용두암 주변에 아무런 시설물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부근에 음식점과 기념품 상점들, 그리고 둘레길들이 형성되어 있어서

그때와는 아주 딴 세상이 되어 있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우리 신혼여행 때는

그야말로 원시 시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화산이 폭발해서

용암이 어찌어찌해서

이곳까지 흘러 왔다가 우연히 이런 모습으로 굳어진 것이 용두암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기에 살을 붙인다.

용과 관련된 이야기를 지어내는데

여러 가지 설이 사람들 입을 통해 옮겨지며

뼈대가 휘기도 하고 살이 붙기도 하면서

설화가 탄생하는 것이다.

한갓 바위 덩어리에 이야기라는 살이 붙어서 

비로소 용두암이 되었다.

 

사실에 정서가 합쳐져야 비로소 윤기가 나는 인간의 삶.

 

용두암에서 발길을 돌려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아내가 오메기 떡을 좀 사자고 했다.

한밤중에 깨어서

뉴욕의 시간과 헷갈린 내 몸이

시도 때도 없이 배고프다는 신호를 보내는 걸 보고

지혜로운 아내가 제안을 한 것이다.

 

언덕길에 거의 다 올라오니 차를 렌트하는 곳 옆에

떡집이 있었다.

떡집 안으로 아내가 씩씩하게 걸어 들어갔다.

나는 밖에서 서성거렸다.

 

잠시 후 아내는 떡 두 개를 

무슨 전리품이나 되는 것처럼 손에 들고 나를 향해 흔들었다.

그곳은 소매를 하는 상점이 아니라 떡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개인에게는 떡 판매를 하니 않으니

딱히 소매가도 책정되지 않았을 것이다.

일반 구매자들이 드나들지 않는 곳에

나타나 당당하게 떡을 사겠다는 아내에게

그냥 맛보기로 떡 두 개를 준 것이다.

 

공짜 떡 두 개.

 

정말 아내와 같이 있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

(결혼 생활 40 년 동안 관찰하고 경험해서 얻은 결론이다.)

사람들이 사는 골목길을 다니며 얻은 오메기 떡 두 개는

제주의 바닷빛처럼 아름다운 기억으로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용두암까지의 산책길은

풍광도 풍광이지만 공짜 떡 두 개로 기억될 것이다.

주제였던 용두암이나 부제였던 책방도 아닌

오메기 떡 두 개.

 

아내에게 공짜 떡을 건네준 떡집 주인의 마음을 기억하며

오늘 아침 나는 그 공짜 떡을

아주 오랫동안 입 속에 넣고 소처럼 되새김질을 하며 먹을 것이다.

마치 영원히 시간을 잊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