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리고 나- 아내의 생일
"아빠, 오후 6 시 15 분에 선영이 픽업할 건데
아빠도 라이드 필요하면 알려 주세요."
어제 오후 두 시쯤에 둘째에게 문자가 왔다.
어제는 아내의 생일이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호텔 식당 'Margie's'에서
저녁 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선영이는 우리 세탁소에서 아주 가까운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자기 차가 없으니 둘째가 자기 동생을 픽업해서
식당으로 가는 길에 나도 함께 가면 어떻겠냐는
지극히 사려 깊은 제안이었다.
나는 전철로 출퇴근을 하기에
차가 없는 까닭에 둘째의 제안은
내 귀를 쫑긋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딸이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가면
몸과 마음이 편할 뿐 아니라
딸들과 친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제안을 한 둘째의 사려심에
실망감을 안겨줄 수도 있는 대답이
내 손끝에서 나왔다.
딸아이의 제안이 고맙기는 하였지만
나의 대답은 'NO!'였다.
"아빠는 먼저 전철을 타고 집에 가서
마님을 식당까지 에스코트해야 하니까."라는
대답도 곁들임을 잊지 않았다.
아빠가 엄마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를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나는 되도록이면 흘려보내지 않으려 노력을 한다.
그런 아빠의 마음을 읽는 아이들은
은근히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다.
나는 전철을 타고 퇴근해서
아내에게 둘째 딸에게서 온 문자에 대한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들려주었다.
모든 편리함을 거부하고
오직 마님을 식당으로 에스코트하겠다는 일편단심으로
달려온 나의 마음을 과시한 것이다.
아내는 또 속아주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아내의 생일이라고 해서
특별히 꽃을 선물한다든가, 요란한(?) 이벤트 같은 걸 하지 않는다.
내 존재 자체가 선물이라는 매년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할 뿐이다.
내가 누구에게 선물하는 능력치가 현저히 낮은 건 사실이다.
게다가 그런 걸 할 줄 아는 주변머리도 없다.
그래도 내가 믿는 구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그것은 내 스스로 정직하다고 믿는 아내에 대한 나의 마음이다.
그래서 어제 아내의 생일 아침 운동을 할 때
트레드 밀 위에서 운동을 하는 아내 옆에서 함께 걸었다.
언젠가 내 블로그에 '사랑의 언에'에 대한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아내의 사랑의 언어는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지혜로운(?) 나는
그 감정의 탱크를 채워주려고
물량 공세(?)보다는
마음이 담긴 몇 마디의 언어와 행동으로
아내의 생일 선물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몇 천만 원씩 하는 목걸이는커녕
몇 백 불짜리 반지 하나 받은 적이 없는 아내는
그런 나의 얄팍한 사탕발림에 잘도 속아 넘어간다.
이렇게 대자대비한 아내는
진실로 나의 'Better Half'이다.
그러니 아내가 어디고 가자하면
나는 마님을 모시는 김기사가 되어
기꺼이 에스코트할 것을 오늘도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고는 아니고 쇼핑하러 갈 때는 예외임을 밝혀둔다.)
https://blog.daum.net/hakseonkim1561/2753#n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