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내릴 거라고 했다.
뉴저지 살 때에는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는
늘 마음 한편이 꽉 막힌듯한 쳇증을
내게 선물했다.
집에서 나와 눈 덮인
알파인 고개를 넘을 때면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어떤 때는 고개를 오르지 못해서
차를 돌려 먼 길을 돌아 출근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브루클린의 아파트와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와서는
눈은 걱정거리 메뉴에서 지워졌다.
차가 못 다니면 전철을 타면 되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네 시쯤,
밖이 훤한 느낌이 들어 일어나 보니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그런데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베란다 턱에는 별로 눈이 쌓이지 않았다.
눈이 언제부터 얼마나 내렸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어차피 폭설이 내리면
세탁소는 개점휴업 상태이니
문을 열지 않아도 되나
오늘 꼭 찾아갈 옷이 있다는 손님과의 약속 때문에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집을 나섰다.
전철역까지는 한 블록 반 정도의 거리여서
별 문제가 없으려니 했다.
그런데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부는지
눈을 바로 뜨고 앞을 볼 수가 없었다.
겨우 전철역에 당도해 보니
입구를 테이프로 막아 놓았다.
전철이 다니질 않는 것이었다.
버스를 타고 어찌어찌하면
가게까지 갈 수는 있겠지만
그런 모험을 하면서까지
손님과의 약속을 지키기에는 나는 이미 많이 타락(?)했다.
'분명 그 손님도 이해할 거야'라고
나를 토닥이며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하루 종일 무위도식을 했다.
'As Good as It Get'라는 영화 한 편도 보았다.
꼬박 열두 시간 이상을 강한 바람과 함께 흩날리던 눈이
오후 네 시쯤 그쳤다.
4 시 반쯤부터 하늘이 갤 기미가 보이더니
다섯 시쯤 되니 멀리 있는
아파트 건물의 유리창에 햇빛이 반사되어
마치 불이 나는 것 같았다.
카메라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바람이 워낙 세게 불어서인지
밤새, 그리고 오늘 하루 종일 눈이 왔었나
하고 의심을 할 정도로
지붕의 8할은 눈이 하나도 덮여 있지 않았다.
얼마나 바람이 세게 부는지
카메라를 든 손을 고정시킬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날은 춥고, 바람은 거세고---
일몰 사진 몇 장을 찍고 집으로 내려왔다.
종일 어둡고 칙칙하던 마음에
밝은 햇살이 들어와
환해진 느낌으로 하루를 맺을 수 있어서
행복한 저녁을 맞을 수 있어서
행복한 느낌이다.
눈이 창문에 달라붙어 얼었다.
얼마나 눈이 내리는지 시계 불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