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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야기 - 창

1982 년 가을,

나는 경기도 과천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군대를 졸업한 뒤 사회에서 첫 여정을 시작했다.

 

그 당시 과천은 허허벌판이었는데

주공에서 막 아파트를 짓기 시작하고 있었다.

 

내가 근무하던 학교는

관악산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에 있었는데

가을 하늘이 그렇게 맑고 푸를 수가 없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일보다

창문 닦는 일에 더 열과 성을 쏟았다.

 

투명한 창문을 통해

가을 하늘을 바라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투명한 창문을 통해 푸른 가을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한 줄의 시를 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토요일 오후,

나는 방과 후 교실의 유리창을 닦았다.

 

가장 설익고 미숙한

교사 초년생이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가 가장 교사다웠던 것 같다.

 

몇 주 전에 노구치 뮤지엄에 들렸다

돌아오는 길에 주변 공장 사이를 걸었다.

창문이 막혀 있었다.

 

갑자기 창 없는 감옥에 갇힌듯

답답해졌다.

 

나는 그다음 주 비 내리는 어느 날

우리 가게 유리창을 닦았다.

 

여름 내내 유리창은

먼지와 빗물이 섞여 빗줄기 같은 얼룩으로

덮여 있었다.

 

한 여름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내 마음의 창엔 얼마나 얼룩이 져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