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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마지막 날 가을 속을 거닐다

시월의 마지막 날 가을 속을 거닐다

 

1.

가을 숲을 거닐었습니다,

10월의 마지막 날에.

10월 30일은 저희 부부의 결혼기념일입니다.

굳이 이름을 걸자면

결혼기념일 축하 산책입니다.

 

봄은 기운이 수직 상승하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반대로 수직 하강하는 계절입니다.

잔바람이 불면 나뭇잎 몇이 나무에서 

몸을 떨면서 분리되어 땅으로 떨어집니다.

 

2.

가을 숲에서 연리근과 연리지를 만났습니다.

아주 우연히 말입니다.

연리근은 한 뿌리에서 가지 둘이 자라난 나무를 말합니다.

그리고 연리지는 나무의 가지가 중간에 서로

이어진 걸 이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나와 눈이 마주친 나무는

연리근이면서도 연리지라 일컬을 수 있는

그런 나무였습니다.

 

한 뿌리에서 비롯되어

두 개의 가지로 나뉘어 자라다가

중간중간에 오작교처럼 가지가 이어진,

그런 나무였습니다.

 

서로 이어진 몸 때문에

영원한 사랑, 혹은 변하지 않는 사랑의 약속이란

속 뜻을 사람들은 연리지와 연리근에 슬쩍 

입혀 놓았습니다.

 

내년에 결혼 40 주년을 맞는 우리 부부도

이 나무와 아주 흡사하게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져도

서로 부둥켜 안은 두 가지는

겨울 매서운 바람이 불어도 능히 이겨낼 것 같습니다.

함께라면 겨울도 그리 외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3.

가을 숲은 빛의 교향악 같습니다.

 

이미 붉거나 노란빛으로 단풍이 든 나무와

여전히 푸른빛을 띤 나무,

그리고 우중충한 갈색으로 시들어가는 나무----

 

아름다운 색으로 사람들의 눈을 끄는 단풍나무와

시답지 않은 색으로 퇴화되어가는 그런 나무들이

서로서로 조화롭게 익어가는 가을 숲.

어떤 것이든 다 가을 숲의 모습입니다.

 

내가 비록 칙칙한 나뭇잎을 가진 나무이더라도

나도 가을 숲을 이루는 

나무입니다.

 

떨어지는 상수리 잎 하나가 나에게

그리 속삭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