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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ish 마을에서 하룻밤

 

Amish 마을에서 하룻밤

노동절을 끼고 1 박 2 일로 

Pensylvania 주에 있는 Amish 마을에 다녀왔다.

나도 너덧 번을 다녀오긴 했지만

하룻밤을 묵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내가 몇 주 전에 버지니아에 살고 있는

초등학교 친구와 함께 하룻밤을 묵고 와서는

그 평화로운 그곳의 분위기를 

나에게도 경험하게 해 줄 갸륵한 마음으로 성사된 여정이었다.

 

1.

가는 날은 비가 오락가락 했다.

 

아내는 우리가 묵을 곳으로 가는 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산책길을 인터넷을 통해 찾아서 차를 세우고

비가 살짝 스치고 지난 흙길을 걸었다.

산책길은 예전에는 기차가 다니던 길이었다.

길의 한쪽엔 냇물이 제법 묵직한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고

또 다른 한 편엔 소와 말의 목장과,

옥수수와 콩밭이 산책길과 함께 이어졌다.

 

정적.

 

동물의 분뇨와 풀 냄새가 아니었다면

산책길은 그림처럼 죽은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 냄새가 정물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아직도 풀냄새와 동물의 분뇨 냄새가 

내 기억 속에서 스멀스멀 살아난다. 

 

2.

Harrisburg라는 Pensylvania 주도를 지나고

이름은 벌써 까먹은 작은 마을에서 아주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곳에 가기 전에 마을의 피자 가게에 들렀는데

젊은 종업원들의 짐짓 놀라는 표정이 아직도 선명하다.

별로 내세울 거리가 없는 작은 마을의 동네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동양인들이 영 낯이 설었나 보다.

 

피자 한 조각을 사서

차 안에서 아내와 나눠 먹었다.

 

점심은 Bonefish Grill에서 먹었다.

로고가 생선뼈가 모티브로 되어있는 프랜차이즈 식당이었다.

웨이트리스가 주문을 받을 때

나는 'Grilled Fish Bone'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생선 뼈를 그릴에서 구워줄 수 있냐는 아주 썰렁한 아재 개그였다.

웨이트리스의 입에서 타이어 바람 빠지는 미소가 새어 나왔다.

 

그녀에게 나는

진상 손님이었을까,

아니면 유머가 있는 손님으로 기억 속에 잠시 남아 있을까?

 

아내에게 핀잔을 받았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은 

그날 꼭 들어맞았다.

 

3.

 

숙소에 도착했다.

제법 큰길 옆에 위치한 "Bed and Breakfast'였다.

 

농장만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곳에서

딱히 별로 할 일도 없어서

옥수수 밭 옆을 따라서 인근에 있는 Amish Grocery 가게에 다녀왔다.

차들이 워낙 빠르게 달려서 살짝 겁이 났다.

제법 규모가 있는 가게는 문이 닫혀 있었다.

가게 앞에는 각양각색의 핼러윈 펌킨이

가게를 지키며 어둠을 맞고 있었다.

 

산책길에도 꽃을 파는 무인 판매대가 있었는데

일요일에는 판매를 하지 않는다는 사인이

가판대에 적혀 있음이 기억났다.

 

Amish 마을에서는 일요일에 종교적 행위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십계명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마음과 정신이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지.

 

낯이 선 옥수수 밭 사이에서

잠시 내 마음의 좌표를 잃었다.

 

-나는 지금 어디 있는 것일까?-

 

3.

 

가끔씩 지나가는 차들과 말발굽 소리가 뜸해지면서

마을에도 깊은 밤이 왔다.

 

새벽에 닭이 울기도 전에 눈을 떴다.

 

우리가 묵은 곳에는

마당에 닭이며, 오리, 칠면조와 염소들도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날이 밝기 전에 집을 나섰다.

주인 할머니가 전 날 가르쳐준

산책길을 탐험하기 위해서였다.

 

산책길에 막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키를 넘게 자란 옥수수나무엔

빼곡하게 옥수수가 달려 있었고

하루하루 말라가고 있었다.

 

아내의 말로는 씨를 받기 위한 용도라고 했다.

 

옥수수 밭에서는 가을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벌레가 보이지 않아서

나는 옥수수 알갱이들이 합창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합창은 옥수수 밭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 숱한 소리의 숫자.

그러나 소리는 단순하며 조화로웠다.

 

4.

 

어둠이 걷히며 시야가 열리며 동시에

안개가 먼 풍경에 장막을 치는 것 같았다.

선명한 풍경을 보는 것보다

반쯤 가려진 풍경의 아련함이

지금도 마음속 망막에 맺혀 있다.

 

가려진 것의 내밀한 신비. 그것이 오래 남는다.

대학 때 올랐던 한라산,

그 정상의 백록담은 갑자기 몰려온 안개 때문에

볼 수 없었다.

백록담의 아주 작은 부분만 마음에 담아왔다.

아직도 신비한 백록담의 풍경.

 

5.

길 가엔 노란 사과와 붉은 사과나무가 열을 지어 서 있었다.

아내는 이브가 되어 사과를 하나 땄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아내가 훔친(?)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예쁜 것과는 거리가 먼 투박스러운 사과는

달콤 새콤한 과즙을 품고 있었다.

 

'사과의 참 맛'

 

요즘 사과는 신 맛을 빼고 단 맛만 강조한 품종이 대세이다.

삶 속에서도 대단한 속도로 

신 맛은 사라지고 단 맛만 추구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추세가 흘러가고 있다.

자꾸 원형이 사라지는 시대에 나는 살고 있는 것이다.

 

 삶에도 단 맛뿐 아니라 신 맛도 필요한 것인데----

 

6.

Amish는 자신들의 종교와 삶의 태도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아주 소박한 옷을 입고,

삶은 단순하며, 종교적인 평화주의를 지향하며 살아간다.

빨래도 손으로 해서 햇볕과 바람으로 말린다.

Amish 마을에서 빨래를 해서 걸어놓은 풍경은 아주 자연스럽다.

 

쉽고 자동화된 방식이 아니라

손을 쓰는 노동을 통해서 삶을 엮어간다.

사과의 단 맛뿐 아니라 신 맛까지도

함께 간직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자동화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단 맛,

신 맛을 멀리하는 삶의 태도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아직도 무언가를 잃어가며 살고 있는 걸까?

 

새벽안개 깔린 Amish 마을에서

옥수수 밭에서 흘러나오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나의 머릿속은 한결 투명해졌고

마음은 완전히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효율성과 편리함만을 따르는 삶이 

남겨 놓은 숙제.

 

신 맛을 거부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완전한 삶은 단 맛과 신 맛이 공존할 때

더 선명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룻밤을 Amish 마을에서 묵고

서둘러 빠른 속도로

도시를 향해  차를 몰아야 했다.

 

그런데 달리는 차에서는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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