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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만 더 가면

 

벌써 4년이 흘렀습니다.

큰 아들이 올 해 대학을 졸업했으니

매릴랜드까지 아들의 입학 오리엔테이션에 다녀온 것이 말입니다. 

메릴랜드 까지는 거의 다섯 시간 가까이 걸리는 

 먼 길이긴 하지만

신입생과 또 부모들의 오리엔테이션 때문에 시간을 쪼개어 다녀왔습니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서둘러 돌아오는 길에
예정에도 없이 펜실바니아 주에 있는 아미쉬 타운에 들렸습니다.
십수 년 전에 다녀온 그곳의 평화롭고 고요한 풍경이
가슴 한 켠에 예쁜 사진 액자처럼 걸려 있어서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눈에 익지도 않은 길을 무작정 찾아 나선 겁니다.

 

예쁜 사진 몇 장 찍고 싶은 욕심도 있었습니다.
아미쉬 타운이란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아직도 전기나 TV
자동차 같은 문명을 멀리 하고
농사를 지으며 자기들만의 신앙을 고수하며 사는 곳입니다.

 1993에 발표도되었던 'Fugitive'라는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10년 전의 기억만으로 무작정 찾아 나서긴 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림짐작으로 한 30분 정도 가면 나오리라고 생각했는데
거의 한 시간이나 달렸음에도 아무런 사인도 없었습니다.
예전에 수월하게 찾아갔던 기억만으로 그곳을 찾는 건, 좀 과장하면 ,
모래사장에서 모래알 하나 찾는 격이었습니다.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곳은 EXIT 하나가 20마일이 넘는 곳도 있었습니다.
새벽 네시에 일어나 길을 떠나서 긴 시간을 운전한 탓에
눈도 스멀스멀 감기고 몸도 찌뿌둥한 상태였습니다.
인내심이 많이 부족한 난 이쯤해서 포기하고 돌아가자고 했는데
아내가 무슨 소리냐며 여기까지 왔는데
그곳에 가야된다고 주장을 굽히지 않아서
마지못해 그러자고 했습니다.
겨우 찾아들어간 편의점에서 지도를 찾아보니
우리가 있던 곳에서 20여분만 더 가면 되는데
하마트면 공연히 시간만 낭비하고 허탕을 칠 뻔 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 사이로 난 길 사이로 자동차가 다니고
또 간간히 말이 끄는 마차를 탄 아미쉬들,
그리고 아이들은 자전거처럼 생겼는데
발로 밀고 다니는 스쿠터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어린 아이의 정말 해맑은 미소도 만났습니다.
그날 옥수수 밭 사이로 드라이브를 하며 사진도 찍고
길 옆 좌판대에서 무인 판매하는 과일과 야채도 사며
옥수수 밭 위로 떨어지는 저녁햇살의 아름다움에 한동안 젖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한 모퉁이를 아름다운 기억으로 채울 수 있었습니다.
 
이쯤해서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을 때 '20분만 더'가면
아름답고 소중한 풍광이 우릴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하며

허리 아픈 삶 속에서도 

어려움을 헤쳐갈 수 있는 교훈을 그곳에서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