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으로 이사를 한 뒤에
삶의 패턴이 새롭게 형성되어가기 시작하는 것 같다.
거의 규칙적으로.
요즘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대략 열 시쯤.
일어나는 시간은 보통 새벽 네 시 반이다.
그런데 기상시간부터 출근 시간까지의 스케줄이 아직 어지중간하다.
대략 두 시간가량의 자유시간이 생기는 셈인데
무얼 할지 아직 생각이 없다.
생각이 없으니 남아 있는 여백은 무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독서를 하려고
어제 가게에서 읽다가 내 팽개치고 방치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영문판을
집에 가지고 와서
오늘 아침에 책장을 열었다.
가게에서는 자연광과 형광등이 합세를 해서
넉넉한 조명을 선사해서인지
비교적 작은 글자를 읽을 수 있었으나
오늘 아침엔 램프의 조명이 넉넉하지 않은 탓인지
읽을 수가 없었다.
거실에 나와 앉아 참 밖을 내다보며 멍 때리기를 했다.
까만 하늘을 배경으로 집들의 불빛이 별빛처럼 빛이 났다.
그러다 보니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어째서 수평선과 나머지 하늘 사이에
긴 띠 모양의 공간을 두고
구름이 형성되는지 도무지 그 까닭을 모르겠다.
그 긴 띠가 붉고 노란빛으로 채색이 되기 시작했다.
그 쫄깃한 흥분은 벌써 3 주 째 접어든
새 집살이가 선사하는 선물이다.
창 앞의 탁자 위엔
아주 싱싱하지는 않아도
식물 하나가 여름부터 모진 생명을 이어오고 있다.
잎 몇을 따서 유리컵 위에도 올려놓았다.
유리컵 안을 보니
하얀 뿌리가 잎에서 나와 아래로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삶을 이어가기 위해
저리 애를 쓰고 있다니-----
나도 이 집에 뿌리를 내려야 하느니.
책도 일고 음악도 들으며
그리고 아침마다 띠처럼 긴 공백을
황홀한 색으로 채워가는
아침을 맞으며
그렇게 뿌리를 내리는 삶.
아침마다 그렇게
내 삶의 뿌리도 자라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