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실존을 만나다
1.
걸친 것 하나 없는
겨울나무.
가로등 불빛의 도움으로 담벼락을 필름 삼아
자화상을 찍었다.
나도 같이 찍었다.
2.
길 가의 상점.
창문을 무슨 까닭인지 스테인리스 스틸로 가려 놓았다.
차도의 신호등 불빛이 반사되어 너울거린다.
이 사진에 아무 설명 없이
신호등 불빛이라고 달아 놓으면 이해할 사람이 있을까?
이상 시인과 그의 시가 생각난다.
3.
어느 집 정원의 장미.
이미 사라진 것도 있고
시든 채 드라이플라워가 된 것도 있다.
어떤 장미 송이는
아이보리 색에 연분홍 무늬를 간직한 채
얼어버렸다.
같은 뿌리에서 피어났음에도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나도 동의한다.
3.
무슨 꽃인가?
노란 꽃이 어둔 정원을 밝히고 있다.
줄기와 잎은 다 시들고 말랐는데
꽃만 환하게 웃고 있는 것 같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루게릭 병으로 아래로부터 시작해
온몸이 마비된 모리 교수의
죽기 전 마지막 강의.
저 꽃도 무언가
내게 마지막 강의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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