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강은 얼마만큼 깊은 소리로
흘러가고 있을까
대학 3학년 때 처음으로 찾은 내 고향 영월,
밤새 강물 소리는 내가 누운 방으로 끊임 없이
흘러들었다.
그날 밤 내 잠 속은
온통 강물 소리로 홍수를 이루었다.
내 핏줄 속을 흐르는 강물 소리
늘 강물소리가 그립다.
강을 옆에 두고도----
강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등은 어둡다.
이미 강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의 머리엔
햇살이 묻어온다.
"아침은 강으로 부터 시작된다. "
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갈대밭이 끝나며 전개되는 강의 모습
오늘은 갯벌이 드러났다.
그 언젠가 배가 닿던 시절의 잔재로 보이는 나무 말뚝도
눈에 들어온다.
아무런 의미 없이 때론 물 속에 잠겨 있는
저 나무 말뚝에 햇살이 와 닿았다.
햇살이 만져도
새로이 눈뜨지 못하는 존재가 맞는 아침도
아침이라 할 수 있을까.
때로 아침도 슬픔일 것 같다.
강도 나이를 먹는다.
저 강물의 나이테
그러나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강의 나이테
공간이 아니라
시간 어디 쯤에 남아 있을 것 같다.
아침은 강에서 시작해 밀려오는 것일까
아니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일까
높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피라미처럼 빛나는 것이 보일 때
아침은 이미 시작되고
그 아침은 이제
전깃줄에 내려 앉았다.
얼마후 다시 지상으로 내려올 것이다.
아침의 빛은 위로부터
내려온다.
강쪽으로 가다보니
온통 거위와 오리들이 길을 점령해버렸다.
아침 햇살을 받아
제 몸에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운 이 오리.
내 몸 어디인가에도
천형처럼 드리워진
짙고 깊은
그림자가 있을 것이다.
오늘 새벽은 아프다.
강 깊은 쪽에 보이는
부두의 잔재들,
더 이상 아무런 쓸모가 없는-----
언제고
아침이 슬퍼지는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나에게도
저 파도도 아플까
보이는 나이테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그러드는
저 허무,
그래도 갚은 강물은
말이 없다
이 풀꽃을 보고 무서워졌다.
어린왕자의 첫 장면이던가,
모자 그림을 그려 놓고 어른들에게 무섭지 않냐고
묻던 어린 일인칭 나레이터.
내게 이 사진은
꽃잎이 다 떨어진 해골이
솜털 보송보송한
어린 몸에 달려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했다.
어린 왕자를 만나면
나도 어린왕자와 같이 이야기하며
놀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강으로 가는 길 열엔
이름 모르는 풀들이 나란히 자라고 있다.
왕자의 키스에 마법이 풀리고 눈을 뜨는 공주처럼
그렇게 햇살의 키스에
눈을 뜨는 아침
작은 바위섬과,
다리.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섬이 아닐까
섬 사이에 존재하는
다리로 해서
'외로운'이라는 형용사를 뺄 수도 있는 존재
인간
햇살에
작은 곤충들도
빛의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너무 햇살이 강해서
색들이 다 맥을 못춘다.
물에 반짝이는 햇살 같은 존재가
나에게도 있었던가
아, 그래
눈만 부신 것이 아니라
숨 까지도 턱턱 막히던----
그런 시간
새벽 강물 소리 들으러 강으로 갔다 집에 돌아오니
텃밭 주위엔 개망초가 청초하다.
다육이도 빠알갛게 볼이 달고----
강물 소리는 듣지도 못하고
햇살이 부리는 요술에 혹해서
풀꽃이며,새에 마음을 빼앗긴 새벽
강에 가서도
색에 취해서 보냈는데
집에 돌아와서도
색이주는 은근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또 빠졌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다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언제나 색이 주는 화려한 유혹에 빠지지 않고
깊은 강물소리 제대로 한번
들어볼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