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대학 초년 시절에 동서양의 시를 외우고 다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마냥 풋풋하고 싱싱하던 그 시절엔 그 시들의 아름다움이
내 마음속에 물이 스펀지에 스미듯 그렇게 스며들었지요.
지금도 꽤 많은 시를 외우고 있는데,
순전히 젊은 시절의 기억력과 감성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외우기에 실패한 시가 있었는데
바로 T S Elliot의 황무지(Waste Land)였습니다.
내가 이해하기엔 너무 난해해서인지 몇 번 시도한 연후에
끝내 외우기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첫 몇 줄은
지금도 이른 아침 푸른 하늘에 남겨진 제트기의 흰 구름처럼
그렇게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4월은 가장 잔인한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그렇습니다
언 땅, 혹은 죽은 땅에게는,
그리고 그 속에서 아무런 희망이나 꿈도 없이
움추리고 겨울잠을 자는 라일락의 뿌리에게
4월은 잔인한 달일 뿐입니다.
그러나 따뜻한 생명의 기운이
벗은 어깨위로 스침을 느끼는 라일락,
그리하여 그 기운에 화합하여 기지개를 켜는 라일락에게
4월은 삶의 희열을 폭죽처럼 터뜨리게 하는 기폭제입니다.
그래서 5월이 되면 라일락은 보랏빛 꽃이파리와
또 그에 어울리는 향기로 5월을,
그리고 세상을 풍요롭게 해 줍니다.
순수한 생명의 자극을 주는 4월에 흔쾌히 응답할 때
우리의 5월은 라일락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빛과 향기로 출렁일 겁니다.
만약 그냥 어두운 땅속의 안락함에 머문다면
오월과 또 그 5월을 맞이하는 세상은 황무지로 변해버리고 말 겁니다.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는 불모의 대지를 바라보는 우리도
더 이상 살아 숨 쉴 수 없게 될 겁니다.
라일락이 4월의 속삭임에 응답하듯이,
그렇게 힘차게 손들고 생명의 부름에 ‘예스!’라고 외치는 달,
아 드디어 4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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