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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일기 3 - Highland Light House

우리가 다섯 시간 정도 운전을 해서

도착한 곳은 Highland Lighthouse(등대)였다.

'Highland'라는 지명처럼 등대는

평지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니 시린 바람이 불어왔다.

얼마나 바람이 야멸차던지

차의 문이 바람에 저절로 닫힐 정도였다.


뉴욕에서 300 마일의 거리,

그리고 그 거리를 잇는 다섯 시간은 

날씨도 바꿔어 놓았다.

떠날 땐 맑았는데 도착해 보니 구름이 빈틈 없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화씨로 60 도가 넘던 기온은 20도 넘게 추락해 있었다.


대학 때 읽었던 작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속에 인용되었던

탈무드 이야기가 생각 났다.(기억이 정확한 지 자신이 없지만)


소설 속에 얼굴 이런 질문이 등장한다.

굴뚝 속에 두 사람이 들어갔다 나왔는데

한 사람의 얼굴엔 검뎅이가 묻었고 다른 사람의 얼굴은 깨끗했다.

이 두 사람 중 누가 얼굴을 씻었을까?


답은 얼굴이 깨끗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자기 얼굴에도 검뎅이가 묻었을 것이라고 유추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검댕이가 묻은 사람은 

자기 얼굴도 깨끗할 것이라고 판단해서 얼굴을 씻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많은 것을 암시해 준다.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어찌 되었든 내 생각의 틀이라는 게 아주 작고 좁아서

세상을 내 눈으로만 본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난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행은 조금씩 내 키를 키워준다.

아니 더 난장이로 만들어 준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로 이런 점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내 생각이 우리가 출발했던 부르클린에만 머물러 있었기에

나는 나를 맞던 Cape Cod의 날씨 때문에 놀라고 당황했다.

그리고 실망했다.

그 실망은 등대를 배경으로 멋진 노을이 담긴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현실이 그렇지 못함에서 비롯되었다.


날씨가 실망스러웠어도

난 아내에게 이렇게 말 했다.


"날이 흐리니 그런대로 분위기가 그윽하네, 사람이 없으니 한적해서 너무 좋아."


사람을 살리는 말이 있고,

반대로 죽이는 말이 있다.


이런 말을 한 내가 얼마나 대견스러웠는지---


주차장엔 우리에 앞서 온 누군가가 타고 온 차가

달랑 한 대가 바람 속에 있었다.

등대로 가는 길 양 쪽은 골프장이었는데

아직 개장을 한 것 같지 않았다.

개장을 했다손 치더라도

골프공이 제 방향을 찾아 날아갈지 영 의심스러울 정도로

바람이 불었다.


등대에 가까이 가자

바람과 파도가 뒤엉킨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분리해 이것은 바람, 저것은 파도라고 할 수 없는

모노의 소리.


물의 분자식이 H2O였던가?

물을 보며 산소와 수소의 존재를 구분할 수 없는 것과 같았다.


골프장 안에 등대가 있는 까닭에

등대는 방탄 유리로 되어 있다고 한다.

골프를 치는 사람 중에 나같은 사람도 꽤  되었던 모양이다.


등대를 지나 해안 쪽으로 거의 다 가니

거기 작은 기념물이 하나 보였다.

바위에 동판을 박아 넣었는데

'1857부터 1996 년까지 등대가 있었던 중심'이라는 내용이었다.


왜 등대를 옮겼을까?


등대는 절벽에서 100 미터 넘는 내륙 쪽으로 옮겨져 있었던 것이다.

바람과 눈과 비, 등등의 자연과 지각 현상에 따라

자꾸 절벽이 깎이는 바람에

부득이 등대를 옮겨야 했던 것이다.


그 곳에 있던 안내판에는 

위험하는 절벽 가까이 가지 말라는 내용과 함께

'오늘은 볼 수 있지만 내일은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말도 적혀 있었다.


그 말이 가슴을 저리게 했다.


'Carpe Diem'


그렇다.

오늘, 지금 해야할 사랑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너무 추웠던 날,

서로 껴 안고 간은 길을 걸을 수 있음은 얼마나 감사한 한 일이지.


오늘을 살고,

지금 사랑하는 일.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가 뒤엉켜

한 목소리로

사랑할 수 있는 지금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피를 토하며 외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