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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이야기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만년필을 쓰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만년필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있더라도 쓰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관공서나 회사의 높으신 분들이

결재를 위한 사인을 할 때 빼고는

만년필을 사용하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기야 결재 서류에 사인을 할 때도 볼펜을 쓰면 되니

만년필은 이제 실용성으로 보면 

거의 쓸모가 없는 물건이 되어 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내게 만년필이 하나 생겼다.

세탁소 손님 중 하나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주인을 알 수가 없다.

언제인지도 알 수가 없다.

 

세탁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중 

참극에 해당하는 것이 있는데

주머니에 들어 있는 볼펜이나 만년필을 실수로

빼지 않고 그냥 세탁기에 넣고 빨았을 때가 바로 그것이다.

 

옷에 묻은 잉크를 제거하기 위해서

거의 반나절 동안 거기 그 일에 매달려

사투를 벌여야 하는데 

때로 잉크가 빠지지 않는 옷감도 있어서

이럴 때의 낭패스러움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짐작할 수가 없다.

 

그러니 손님이 맡긴 옷 주머니에서 나온 펜은

나같이 세탁소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겐

마치 원수 같은 느낌이 들어서 치를 떨게하는 대상이다.

 

얼마 전에 손님 주머니에서 나온 수저통 두 개에 해당되는 펜들을 

정리하면서 우연하게도 만년필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그냥 버릴까 하다가

그냥 내가 보관하기로 했다.

 

만년필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이 떠 올라서 였다.

 

내 또래의 사람들은 국민학교 다닐 때

연필을 깎아서 썼다.

중학교에 들어 가면서 볼펜이나 만년필의 시대가 열렸는데

중학교 입학 선물로 가장 인기 있었던 물건이

시계나 만년필이었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

아버지는 월남에 계셨다.

 

펜맨쉽이라고 해서 영어 필기체 연습을 할 때

점선을 따라 있으며 글씨 쓰는 연습을 했는데

처음엔 펜대를 사용했다.

잉크병에 담긴 잉크를 찍어서 썼는데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손에 잉크가 묻는 건 예사였고

가끔씩 나같이 주의력이 산만한 사람은 

잉크를 병째 쏟는 사고도 자주 저질렀다.

 

그래도 볼펜을 쓰지 않은 이유는

그 당시 볼펜의 질이 그다지 좋지 않은 까닭에

볼펜 똥이라고 해서 글씨를 쓰고 난 뒤 쓸데없는 자국을 남기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 때 내가 간절히 갖고 싶었던 것이

만년필이었다.

 

월남에 계신 아버지께 편지를 썼다.

말하자면 연필 나빠서 공부 못 하겠으니

만년필 하나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군인이셨던 아버지께 내가 뭘 부탁하는 적은 거의 없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서 대부분의 유년 시절을 보낸 나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낯설고 두려운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 뒤 내 손에 만년필이 쥐어지게 되었다.

그것도 화살 모양의 꼭지가 달린 파카 만년필이.

(영어로 Parker지만 우리는 파카라고 불렀다.)

손재주가 훌륭하신 아버지는 만년필에 '김학선'이라고

예쁘게 내 이름까지 새겨서 보내주셨다.

 

만년필과 만년필보다 더 만년필에 새겨진 아버지의 글씨는

아버지가 더 이상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은근히 내게 알려 주었다.

 

슬슬 잘도 굴러가는 구슬처럼

파카 만년필은 저절로 글씨가 써 지는 것처럼

내 손을 움직였다.

한글은 지독하게 못 쓰는데도

영어 글씨는 얼마나 잘 쓰는지

여자 영어 선생님의 칭찬을 들었다.

 

일취월장 내 영어 실력은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거의) 정상이었다.

(기억은 자신을 미화하려는 경향이 있음)

 

아버지와 내 마음을 이어준 만년필.

 

그래서 내 눈에 들어온 만년필을

무단으로 내가 쓸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만년필은 잉크가 든 카트리지를 사용하게 되어 있었다.

 

큰 아들에게 잉크 카트리지 구입을 부탁했다.

(공부에 바쁜 큰 아들과 소통하는 방식 중 하나가

온라인 물건 구입을 부탁하는 일이다.)

 

메신저에 부탁을 남기면

아들이 편한 시간에 주문을 하는 식이다.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카트리지만으로는 너무 주문 양이 적으니

아빠가 좋아하는 커피를 추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부탁한 것 외에도 아빠의 마음을 헤아리는 아들의 말이

고마웠다.

나는 마태오복음 3장 16 절의 말씀을 이용해서

내 마음을 표현했다.

 

"You are my beloved son, with whom I'm well pleased."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맘에 드는 아들이야.)

 

사실, 자식은 다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자식이 자신의 자유 의지를 사용해서

부모를 기쁘게 하려는 마음이 있을 때 부모의 맘에 드는 것이다.

 

 

이런 나의 마음이 아들에게 전해졌는지 아들은 

내게 이모티 콘으로 자기의 마음을 전했다.

 

 

 

아빠의 마음에 감동도 하고 행복하다는 뜻일 것이다.

 

아들이 나의 부탁으로 주문해 준

카트리지를 만년필에 끼워 넣으니

감격스럽게 글씨가 써진다.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 주는 만년필로

흰 종이에 '사랑해'라고 썼다.

 

만년필과 만년필의 카트리지를 통해나는 나의 아버지와 또 나의 아들의 마음을 이을 수 있었다.

 

언제고 내 마음과 누군가의 마음을 잇는 글을  

만년필로

천천히 쓰고 싶다.

 

고등학교 때 

시인이었던 국어 선생님 한 분은

시를 쓸 때 만년필 잉크에 향수를 섞어서 쓴다고 하셨다.

당신의 시를 읽는 사람이 향기도 맡게 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새로운 만년필은 잉크 카트리지에 

향수를 섞을 수도 없으니

내 마음의 향기를 담은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향기를 맡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