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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구꼴통이다

나는 수구꼴통입니다


지난 아버지 날 선물로 마님께서

스마트 폰을 하사하셨다.

아이폰 5였다.

(사실 난 아이 폰이 뭔지, 그 뒤에 따라 붙는 숫자가 뭘 의미하는 지도 모른다.)

마님은 어머니 날에 아이들로부터

아이폰 6을 선물로 받은 터라

더 이상 숫자가 하나 적은 전화기가 필요치 않았을 것이기에

마침 아버지 날을 맞아 

자기가 쓰던 것을

선심 쓰듯 선뜻 내 손에 쥐어준 것이다.


현재까지 쓰던 전화기는

한국 삼성에서 만든 제품인데

내 기억으로는 계약 연장을 하면 통신사에서 무료로 주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면 종 9품짜리 전화기가 정 3품,당상관으로

신분 상승한 것이니

황공무지로소이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와야 함에도

기분은 그저 떨떠름할 뿐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스마트 폰의 기능은

모르긴 하지만 전화기+콤퓨터+카메라일 것이다.

스마트 폰의 기능을 잘 알면

이 세 가지 기능을 손바닥 안에 두고

화면을 이리 당기고 저리 밀면서

천지창조까지는 아니더라도

참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폰'이면 그냥 전화기 기능만 있으면 될 것을

그 안에 이 것 저 것 여러 기능을 버무려 

'스마트'라는 수식어까지 앞에 붙어서

내 눈 앞에 나타난 '스마트 폰'을 볼 때마다

내가 얼마나 스마트 하지 못한고 열등한 존재인가를 통렬히 깨닫곤 한다.


나는 전화기 따로,

콤퓨터는 컴퓨터 대로 따로 쓴다.

물론 카메라는 카메라 대로 따로 사용하고 있다.


복합적인 기능을 이해하고 실행하는

나의 뇌 용량이 턱 없이 부족한 것 같다.


쓰던 전화기가 조금 손에 익으려 하니

새로운 전화기로 도전하라는 마님이 

고맙긴 커녕 야속한 것이 솔직한 내 마음이다.


미루다 미루다 드디어 새로 하사 받은 아이폰에 sim카드를 갈아 끼고

전화기를 열어 보았더니

마님의 전화 번호부가 그대로 뜨는 것이 아닌가?

내가 필요한 전화번호는 보이질 않았다.

꼭 필요한 기능인 전화기의 기능도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먼저 쓰던 전화기에는 내 전화 번호부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요즘은 전화기를 두 개를 들고 다닌다.

혹시라도 급히 전화할 일이 있을까 해서이다.


쌍권총이 아니라 '쌍폰'이다


어제 저녁 손녀 Sadie에게서 온 전화도 받을 수 없었다.

나중에 보니 진동으로 되어 있었고

아파트에 돌아 와서는 전화기가 주머니 속에 들어 있으니

당연히 받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직도 전화 소리가 나도록 하는 법을 모른다.)

아무리 전화기가 스마트한들

사용하는 사람이 스마트하지 못하면 그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그야말로 돼지 발에 진주일 것이다.



모두가 스마트 폰을 스마트하게 쓰는 세상에 살면서

정 3품 스마트 폰을 소유한 나는

스마트 폰을 은근히 증오하고 있다.


무선 전화기가 처음 나왔던 시절이 그립다.

전화기 뚜껑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요즈음은 누가 뭐래도 

스마트 폰이 대세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마님만 해도 스마트 폰을 사용해

길을 찾기도 하고

은행 업무도 자유자재로 할 뿐더러'

사진을찍어서 자유로이 SNS'활동을 하는 '경지'에 이르렀으나

나는 전화 한 통화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서 헤매고 있다.


이젠 세상 사람을 구별할 때

스마트 폰을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을 것 같다.


스마트하지 못한 사람들의 비애를 자아내는

'스마트 폰이 없는 세상'을 나는 염원한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 폰을 스마트하게 쓰는 세상에서'

가장 초보적인 전화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물 스마트폰을 손 바닥에 놓고서

뚜껑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자유자재로 전화를 걸고 받던 시절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모든 전화기가 평등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나는

맞다, 


수구꼴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