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 왔습니다.
아침 여섯 시 반에 출발 해서
근 다섯 시간이 걸려 도착한 통영의 첫 인상은 평화였습니다.
남쪽이긴 하지만
바닷 바람 때문인지 추위가 옷 속을 뚫고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제일 먼저
동피랑이라는 곳에 있는 벽화 거리를 천천히 거닐었습니다.
벽화가 건네는 이야기에 귀도 기울이고
말을 거네기도 하면서
천천히 시간을 잊고 걸어다녔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몸이 오슬거리며 시장기가 몰려 왔습니다.
우리는 시장통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서호 시장 안에 있는 작은식당에서 '시락국밥'을 먹었습니다.
여러 생선을 끓여 우려낸 국물에
시래기를 넣어 만든 국밥입니다.
아침 일을 마치고 바다에서 막 돌아온 어부들이
시린 바닷 바람만 가득한
몸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던 음식이 아닌가 합니다.
뜨끈한 국물에 얼었던 몸이 어느새 스르르 녹았습니다.
시락국밥은 가장 통영 다운 음식일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반찬이 스무 가지도 넘었습니다.
마음대로 골라다 먹었는데 내 입엔 일반적으로 짰습니다.
남 쪽이라 그럴 거라고
나름 생각이 들었는데 모르겠습니다.
주인 아주머니의 친절한 정이
국물에 우러나 있어서 시락국밥은
더 뜨거웠던 것 같았습니다.
몸 뿐 아니라 영혼 마저 따스해지는 음식입니다.
시락국밥은,
점심을 먹고
지인이 예약해 둔 민박집을 찾아가 짐을 풀었습니다.
대문이 예뻤습니다.
안채로 들어가는 초록색 문이
하얗게 칠한 집을 배경으로 도드라졌습니다.
색깔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데크에 놓여진 테이블에 잠시 앉아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배에 대고 무어라고 소리치면
바로 대답이 돌아올 만큼
바다가 가깝게 있는 곳이었습니다.
어부들 몇이 배 위에서 낚시를 하는 모습이 한가로왔습니다.
한 겨울이지만 어께에 내려 앉는 햇살의 무게가
기분 좋게 느껴졌습니다.
머리가 긴 남자 주인의 인상이 아주 좋았습니다.
"예술하는 분이세요?"
기자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여주인은 커피를 마시겠냐고 물었습니다.
물론 우리 대답은 '예스!"였음을 짐작하실 겁니다.
잠시 후에 커피를 갈고 내려서
백자의 정갈한 빛을 띤 커피잔과 함께 들고 나왔습니다.
아 그리고 말입니다.
아주 선명한 오렌지 빛깔의 곶감도 한 접시 곁들였습니다.
산청이라는 곳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하더군요.
산청은 우리가 통영에 오면서 표지판으로
이미 친숙해진 곳이었습니다.
어때요, 두 부부의 마음이 보이지 않아요?
여러 빛깔들 때문에
커피를 마시기도 전에
입 안이 상쾌해졌습니다.
바다가 가까이 바라다 보이는 테이블 주위엔
얼마 동안 시간이 비껴 지나갔습니다.
햇살이 따스했습니다.
우리는 밖으로 나와
통영 중앙 우체국으로 향했습니다.
청마 유치환이 연인 이영도 시인에게
연서를 써서 부치던 곳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것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실제로 우체국 창문으로 에메랄드 하늘빛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는 했습니다.
주변의 건물들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청마를 흉내내어
각자 아내에게 엽서를 썼습니다.
나는 미국의 아내에게 썼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전달 될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좋습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살았던 곳이라 그런지
그 기를 받아 우리 마음도 예술적이 된 것 같습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다가
때로는 멈추기도 하는 곳입니다,
통영은.
사랑 받기 보다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곳입니다,
통영은.
사랑하길 원한다면,
평화롭길 원한다면,
어서 이 곳으로 오시길 바랍니다.
이젠 나도 저녁 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막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젠 바다 저 건너편의 상점의 네온 불빛이 물 위에서 너울너울 춤을 춥니다.
평화로운 밤이 되길 바랍니다.
나도 오늘 밤은 깊은 잠을 잘 것 같습니다.
PS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여러가지 생선을 곤 국물이 아니라 장어를 곤 국물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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