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엔 뉴욕 마라톤 대회가 열렸습니다. 저도 아는 사람이 한국에서 이 대회에 참가를 하게 되어 아내와 함께 응원하러 출발점에서 12마일 되는 지점으로 향했어요. 맨하탄이 보이는 윌리암스 버그 지역이었지요. 그곳에서 큰 딸아이의 친구들이 밴드를 조직해서 벌써 3년 째 자원봉사로 선수들과 관중들에게 음악을 선사한다고 하니 이왕이면 딸과 또 그 아이의 친구들도 격려할 겸해서 그곳을 응원 장소로 정한 거지요. 저희가 그곳에 도착해보니 벌써 사람들이 길가에 늘어서서 본 경기에 앞서 미리 시작된 장애자 선수들의 레이스에 환호로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신체구조에 맞게 설계된 휠체어에 앉거나 반쯤 누워서, 또는 엎드린 자세로 바퀴를 돌리며 최선을 다해 경기에 참여하는 장애인 선수들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지고 또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어떤 장애자는 두 팔이 없으니 휠체어에 전진해야 하는 반대 방향으로 앉아서 발로 땅을 밀며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흰 머리의 연세 지긋하신 분들도 있는 힘을 다해 힘겨운 경기를 하고 있었지요. 장애자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 옆에는 거의 선수 만큼의 자원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길을 인도하고 길을 트는 사람, 혹시 있을지도 모를 사태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어떤 선수 곁에는 서너 명의 자원 봉사자가 같이 하면서 계속 격려의 말과 용기를 북돋아주었습니다. 참 아름답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풍경들이었지요. 그때 제가 이웃들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한 일이 뭐가 있나 생각해보았습니다. 별로 떠오르는 기억이 없었죠. 그저 제 앞가림하기 바쁘게 사는 삶이어서 그렇다고 자위해보았지만 부끄러운 느낌이 영 가시질 않았습니다. 정종수 시인의 ‘길가의 돌’이라는 시중에 이런 귀절이 있어요. 나 죽어 하느님 앞에 설 때 여기 세상에서 한 일이 무엇이냐 한 사람 한 사람 붙들고 물으시면 나는 맨 끝줄에 가 설 거야 내 차례가 오면 나는 슬그머니 다시 끝줄로 돌아가 설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세상에서 한 일이 없어 끝줄로 가 서 있다가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내 차례가 오면 나는 울면서 말할 거야 정말 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무엇인가 한 일을 생각해 보라시면 마지못해 울면서 대답 할거야 하느님, 길가의 돌 하나 주워 신작로 끝에 옮겨놓은 것 밖에 한 일이 없습니다 누군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않게 돌을 옆으로 치워놓는 작은 일들이 이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뉴욕 마라톤을 보면서 이렇게 돌을 주워 옆으로 치우는 사람들이 주위에 참으로 많다는 사실이 저를 부끄럽고, 또 행복하게 해 주었답니다. 뉴욕 지역에서만 20년도 훨씬 넘게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뉴욕 마라톤 구경을 했는데
제겐 참 인상 깊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12마일 지점에서 아는 사람이 통과하는 걸 보고 저와 아내는 다시 결승점이 있는 센트럴 파크로 향했습니다. 가을이 노란 색으로 물들고 있는 센트럴 파크엔 결승점을 향해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는 선수들을 응원하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고개를 들이밀 틈도 없이 겹겹이 길 양쪽으로 늘어선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선수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는데 한 사람이 자리를 뜨는 틈을 타서 겨우 비집고 들어가 구경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선수들의 표정과 행동들이 각양각색인 것이 참 재미 있었어요. 웃으면서 응원 나온 사람들에게 개선 장군처럼 손을 흔드는 선수, 고통스러워 하며 얼굴을 잔뜩 찌푸린 선수, 응원 나온 사람들과 악수 하면서 감사하는 선수, 오히려 자기의 카메라로 응원 나온 사람들의 모습을 찍는 선수 등 천태만상이었고, 출신국도 거의 200여 나라가 되었지만 한 가지 공통된 것은 모두 최선을 다했다는 점인 것 같아요. 스태튼 아일랜드를 출발해서 뉴욕시의 5개 보로를 모두 돌아서 맨해탄의 센트럴 파크의 결승점에 이르기까지 최선을 다하여 골인 지점에 다다른 선수들에게는 기록에 관계 없이 메달을 주더군요. 그리고 가족과 친지들의 따뜻한 포옹까지 선물로 받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라톤과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태어나서 죽음이라는 결승점에 이를 때까지 최선을 다하면 그 상으로 하느님께서는 모두에게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거라는 생각말이지요. 그러니 한 평생을 성실히 최선을 다한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마라톤의 결승점과도 같이 자랑스럽고도 기다려지는 순간이 아닐까 해요. 결국 죽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축제의 삶으로 바뀌는 순간이 되는 거죠. 이런 글도 생각나네요. `죽음은 하나의 도전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지금 당장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가르친다.` 그래요 순간 순간의 삶을 성실하고 사랑으로 채워가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해요. - 김학선 요한의 11월 11일, `가톨릭 선교방송 원고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