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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신 팔도강산

 

신(新) 팔도강산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팔도강산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김희갑황정순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다.

나 역시 어린 시절 그 영화를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작년에 자동차로 긴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아내가 유튜브로 그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운전을 하던 나도 곁눈질로 슬쩍슬쩍 화면을 들여다보며 함께 보게 되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아내(황정순)가 환갑을 맞자 남편(김희갑)은 그녀와 함께 전국 팔도에 흩어져 사는 자식들을 찾아 길을 떠난다.
자식들은 저마다 의사, 건축가, 부유한 농부가 되어 제법 성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부모에게는 두둑한 용돈과 극진한 대접을 아끼지 않는다.

물론 그 영화는 당시 정부 홍보의 색채도 짙어서 다소 인위적인 느낌이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보고 있노라면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잘 살아가는 자식들을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부모의 표정 속에서, 시대를 초월한 가족의 정을 느끼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우리 부부도 지난주부터 나름의 ‘신(新) 팔도강산’ 여정을 시작한 셈이다.

지난 일요일에는 셋째 딸과 브런치를 함께했다.
사위는 음향 기술자인데, 밴드를 따라 유럽 여러 나라로 공연 여행을 떠나 꽤 오랜 기간 집을 비우게 되었다.
혼자 남게 된 딸의 빈자리를 잠시라도 덜어주고 싶어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이다.

브런치를 마친 뒤 우리는 곧장 아들네 집으로 향했다.
아들 부부가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며 하룻밤을 비우게 되어 손자를 맡아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손자와 1박 2일을 보내며 웃음 가득한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Connecticut에 있는 둘째 딸네 집에 와 있다.

5월은 둘째에게 특별한 달이다.
생일과 결혼기념일이 함께 들어 있는 데다, 이번에는 더 큰 변화까지 찾아왔다.
새 학기부터 New York University 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사위 또한 딸의 표현을 빌리자면 “Huge Promotion”을 받아 직장에서 큰 도약을 하게 되었다.
아마 그래서 올해의 5월을 더욱 특별하게 기억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둘째 부부에게는 ‘Bean Sprout’라는 이름의 반려견이 있다.
우리는 그냥 정겹게 “콩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딸 부부가 여행을 떠난 동안, 콩이와 함께 지내기 위해 우리가 이 집에 와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지금 우리의 여행은 단순한 유람은 아니다.
손자도 돌보고, 반려견도 맡아주고, 때로는 빈집도 지켜주는 작은 책임이 함께 따라온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자식들이 아직 우리를 믿고 의지해 준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 또한 기쁜 마음으로 그 부탁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 역시 얼마나 큰 축복인가.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어쩌면 우리 부부도 옛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오늘도 또 다른 팔도강산을 여행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여행길의 목적지는 관광지가 아니라, 자식들의 삶 한가운데라는 점만 조금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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