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성곽길 걷기
16일 오후,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17일에는 고등학교 친구 몇몇과 함께 수원성곽길을 걸었다.
종로 3가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수원역까지 갔다.
친구 정민이는 내가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할 것을 알고,
자기도 서둘러 수원역으로 나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육신의 눈은 조금씩 어두워져 가지만,
마음의 눈은 오히려 더 밝아지는 듯하다.
그 사실이 문득 고맙고, 또 행복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한국에 올 때면
친구들과 산에 오르거나, 어제처럼 함께 걷는 시간을 갖는 것을 좋아한다.
또 하나의 즐거움은 친구들의 모임에 함께하는 일이다.
기타 동호회와 독서 모임이 있는데,
일정이 허락하면 그 모임들을 우선으로 챙기려 한다.
알아보니 기타 동호회는 내가 도착한 날 이미 모임을 가졌고,
독서 모임은 이번 일정과 맞지 않아 함께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어제 친구들과 함께 걸었던 시간은
더욱 소중한, 일종의 작은 행운처럼 느껴졌다.
사실 수원성곽길은 2년 전쯤 한 번 걸어본 적이 있다.
늦은 오후부터 어둠이 내릴 때까지,
풀코스의 절반 정도를 걸었었다.
조명이 켜진 성곽 위를 걸었던
이른 봄밤의 은은하고도 고요한 기억이 남아 있는 그 길을,
이번에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걸을 수 있어 참으로 좋았다.
걸음을 옮기다 보니 몸이 따뜻해졌고,
어느새 날씨마저 한층 포근해진 듯했다.
연못 근처에 앉아 잠시 쉬어 갔다.
그곳에는 수양버들과 산수유, 그리고 개나리가 있었다.
수양버들 가지에는 희미하게 노란 기운이 스며 있었고,
산수유 꽃은 싱그럽고 선명한 빛으로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개천가의 개나리는
여리고 수줍은 꽃잎 몇이
세상을 향해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함께 걷는 친구들의 발걸음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어지며
한 길 위에 고요히 놓여 있었다.
그러나 문득,
이 발걸음에도 언젠가는 끝이 있겠지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나는 언제 다시 이들과 함께 걸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잠시, 마음이 미세먼지 낀 하늘처럼 뿌옇게 흐려졌다.
하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털어내었다.
지금 이 순간의 따뜻함과 기쁨만을
온전히 마음에 담아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의 몸은 점점 늙어가고,
발걸음도 지금보다 더 느려질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마음만은
수양버들처럼, 산수유꽃처럼,
그리고 개나리처럼
그 푸르고 노란 빛을 잃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의 여정은 화성 행궁에서 마무리되었다.
함께 치킨을 나누어 먹고, 시원한 맥주도 한잔씩 곁들였다.
비행과 시차 때문인지
몸에 피로가 서서히 밀려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살다 보면 그 ‘기약’이 희망이 될 때도 있고,
때로는 허망한 약속으로 남을 때도 있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 하나의 선물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오늘의 이 기억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꺼내어 보면,
조용하고도 따뜻한 감정으로 되살아날 것이다.
나는 피로에 이끌리듯
호텔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몇 번이나 졸았다.
종로 3가에서 내려야 했지만,
그만 졸다가 종로 5가까지 가고 말았다.
졸음에 몸을 맡긴 채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
나는 문득 천상병 시인의 「귀천」 한 구절을 떠올렸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그날의 걸음과 웃음,
그리고 함께한 시간들이
언젠가 정말로 ‘소풍’처럼 끝나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조용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날은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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