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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산골일기, 첫날

산골 일기 – 첫날

3월 15일, Rockaway 바닷가의 콘도를 떠나 Catskill 산자락의 집으로 이사했다.

목요일 오후, 우여곡절 끝에 클로징을 마쳤다.
금요일 아침 7시 반부터 시작한 이사는 밤 열 시가 다 되어서야 비로소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짐은 집 안에 아무렇게나 풀어놓은 채, 방 한쪽 귀퉁이에 매트리스를 깔고 대충 잠을 청했다.
이튿날 아침, 도망치듯 집을 나와 다시 바닷가 콘도로 향했다.

이사 결심을 하기 전, 이미 작년에 한국행 비행기 표를 끊어두었고 출발일은 일요일이었다.
산간 지역에는 아침부터 눈이 하염없이 내리기 시작했다.

자칫 고립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토요일 아침, 서둘러 산을 내려온 것이다.

그렇게 한국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것은 월요일 밤이었다.

공항에서 가까운 콘도에 들러 하룻밤을 묵었다. 혹시 몰라 남겨두었던 매트리스와 이불 덕에 피로를 겨우 풀 수 있었다.
다음 날 저녁에는 장인 댁에 들러 인사를 드리고 또 하룻밤을 보냈다.

그날 아침,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흔히 말하는 ‘번개’였다.
이사와 집 공사로 정신없이 지내느라 집들이를 미루고 있었던 친구는,

우리가 먼 산골로 떠나게 되었다는 소식에 서둘러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좋은 점이 하나 있다면, 육신의 눈은 흐려지지만 마음의 눈은 조금씩 밝아진다는 것이다.
친구는 우리를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식탁 위에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처럼, 그의 마음이 넉넉하게 전해졌다.

장인 댁을 나서 새 집으로 향한 시각은 오전 9시 30분쯤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11시 50분. 대략 135마일, 약 217킬로미터의 거리였다.

서울에서 전주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집에 도착하기 전, 근처 우체국에 들렀다.
1855년쯤 지어진 건물에 자리한 작은 우체국. 직원 한 명이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주소로 편지가 배달되나요?”

직원은 이 지역에는 각 가정으로 우편이 배달되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우체국 안에 있는 사서함, PO Box를 이용해야 한다며 신청서를 건네주었다.
대부분의 미국 주택에는 도로 입구에 우체통이 있지만, 이 집에는 그것조차 없었다.

작은 의문 하나를 그렇게 풀었다.

집에 도착해 차고 문을 열려고 리모컨을 눌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지하실의 물펌프 스위치를 올렸다.

산골의 집은 수도 대신 지하수를 끌어올려 쓴다. 그러나 펌프도 묵묵부답이었다.

순간 불안감이 밀려왔다.
전등 스위치를 눌러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클로징을 하며 이전 주인은 전기를 끊었고, 우리가 한국에 다녀오는 동안 이 집은 전기도 물도 없이 비어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통신이었다. 집에는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지 않았고, 산중에서는 전화조차 제대로 터지지 않았다.
인터넷이나 전화를 쓰려면 10마일 넘게 떨어진 Margaretville까지 나가야 했다.

할 수 없이 이웃집 문을 두드렸다.
두 집은 비어 있었고, 세 번째 집에서야 낯선 방문자를 경계하는 눈빛을 마주했다. 젊은 부부였다.

사정을 설명하자 그들은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나는 그 집 처마 밑에 서서 전기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 짧은 통화는 이상하리만치 길고 지루하게 이어졌다.

언제 전기가 들어올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더 불안했다.

뉴저지를 떠날 때 화씨 72도였던 기온은, 이곳에 도착했을 때 52도까지 떨어져 있었다.

한 시간을 넘게 통화를 이어가던 중,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화는 자꾸 끊어졌다 이어졌고, 그 와중에 보이스피싱까지 의심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큰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웃 부부는 외출을 하면서도 처마 밑에 편히 있어도 된다며 문도 잠그지 않고 떠났다.

나는 모든 일을 아들에게 맡긴 채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와 함께 Margaretville까지 내려가 물을 사와 늦은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슈퍼마켓 주차장에서 카드회사에 전화를 걸어 도용 신고를 하는 데에도 또다시 40분이 걸렸다.

산골 생활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모든 환경이 낯선 이에게 텃세를 부리는 듯했다.

어쩌면 산골에 대한 낭만은 가슴속에만 남겨두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짐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았다.
이 집은 바깥보다 더 차가운 것 같았다.

화목난로에 불을 지폈다.
마른 장작이 불길 속에서 활활 타올랐다. 난로가 서서히 달아올랐다.

어둠 속에서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새색시처럼, 조신하게.

춥지만 따뜻하고 아늑하게, 산골의 첫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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