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 유감
어제는 설이었다.
한국에서라면 민족의 명절이라고 해서 온 국민이, 나라가 들썩였을 터이지만,
내가 사는 뉴욕의 바닷가에는 한국의 그런 분위기가 풍겨오질 않았다.
단지 날이 좀 풀려서인지
아침에 베란다로 나가는 문을 열었더니
한동안 얼어붙었던 바다 냄새가 수줍게 밀려들어왔다.
아내와 구름이 가득 찬 하늘을 이고 아침 산책을 떠났다.
아내는 혹시 설날의 해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다.
그런 기대를 하는 아내와 달리 나는 진즉부터 두터운 구름의 두께를 보고
이미 그런 기대를 지워버렸다.
보드워크 위에는 군데군데 눈이 녹아 흐른 물이 얼어 살얼음판을 형성하고 있었다.
아무리 조심을 해도 몇 차례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어야 했다.
69 스트릿까지 걸어갔다가 'Local's'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씩을 주문해서
아주 천천히 라르고의 속도로 마셨다.
가끔씩 주변의 젊은이들이 서핑 보드를 메고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지난 토요일에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만두로 아내가 만둣국을 끓였다.
떡국떡이 빠진 순전한 만둣국이었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떡국이 없는 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떡국을 먹어야 비로소 내 나이에 한 살이 추가된다고 믿는 한국인에게
떡국을 먹지 않고 설날을 지난다는 것은
도도히 내려오는 한국 전통에이라는 물살을 거스르는 행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제 설날에 떡국을 먹지는 않았지만
우리 식구는 지난 토요일에 우리 집에 모여서 설날을 지냈다.
아내가 전을 부치고, 나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내가 미리 만들어 놓은 소를 가지고
아디들과 손주들이 만두를 빚었다.
그 만두와 떡을 함께 끓여 떡만둣국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한국의 전통 명절을 미국 땅에서 지키고 기념하는 일은 쉽지 않다.
공휴일이 아니어서 식구들이 모이기가 어렵다.
물론 한인 밀집지역에서는 학교나 지역에서 설날 행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현실적으로 한국 전통 명절을 기념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 식구는 토요일에 모여서 설을 쇠었다.
일을 해야 하는 큰 사위,
오디오 기술자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콘서트 투어를 하고 있는 둘째 사위,
그리고 군대에 있는 막내아들은 함께 하지 못했지만
모두 모여 떡만둣국을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설이나 추석 같은 전통 명절에 한국사람들은 귀성을 한다.
귀성은 돌아간다는 뜻의 귀(歸)와, 살피고 문안한다는 뜻의 성(省)이 합쳐진 말이다.
아무 날이면 대수인가,
식구들끼리 모여 서로 안부를 나누고,
떡국 한 그릇씩 나누어 먹으며 웃음꽃을 피워낼 수 있다면
그날이 바로 설날이지.
까치설날이 오기도 며칠 전에 식구들끼리 모여
설날 행사를 치르며 피웠던 그 웃음소리가
어제 설이 지나고 오늘까지도 생생하게 집 안을 떠돌고 있다.
아마도 설날은 떠나간 시간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돌아오는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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