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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난꽃 지자, 난꽃 피다

난꽃 지자, 난꽃 피다

올 1월 15일이면 장모님이 우리들과 영영 세상에서 이별을 한 1주기가 된다.

장모님은 생의 마지막 부분을 신장 때문에 고통을 받으셨다.

신장 기능이 조금씩 하락하다가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는

몸에 특별한 기구를 설치해서 일종의 투석을 하셨다.

내가 의학적인 지식이 옅어서 클리닉에 가서 투석을 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과정을 집에서 하기에 어느 정도의 불편함이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워도

성당을 다니시거나 집안 행사에 참여하시는 등 일상생활을 찬찬히 영위하셨다.

 

그런데 작년 9월인가 10월에 문제가 발생했다.

투석을 위해 몸에 설치되어 있는 기구와 연결되는 부분이 감염되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정확한 진료과정을 잘 모르지만 주사나 약물 영향 때문인지

몸뿐 아니라 정신도 혼미해지셨다.

아내가 장모님 곁에서 간병을 하며 지냈는데

장모님이 병원에 더 머무시면 상태가 더 나빠질 것으로 판단해서

가족회의를 했다.

장모님을 집으로 모셔서 형제들끼리 돌아가며 간병을 하기로 한 것이다.

더 이상 병원에 머무시면 상태가 더 나빠질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 내가 장모님을 모시러 갔는데

장모님은 말씀 한 마디도 하지 못하셨다.

그날이 작년 10 월 23일이었다. (내 생일이어서 기억하고 있다.)

큰사위인 내가 누구인지도 인지하지 못하시는 것 같았다.

 

장모님이 집에 돌아오신 뒤,

장인어른과 아내와 아내의 처제와 처남들의 정성스러운 간병이 시작되었다.

아침저녁으로 투석하는 일은 장인과 둘째 처제가 거의 했고

다른 형제들은 순번을 정해서 하루 24 시간을 장모님 곁에 머물렀다.

(덕분에 나는 요리 실력이 늘었다.)

어머님의 신장 기능이 좋아지지는 않았어도,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하고

병원에서 잃어버렸던 말씀도 하시기 시작했다.

장인과 아내와 처제들의 어머니에 대한 희생과 사랑은 

옆에서 보아도 치열하게 아름다웠다.

장모님의 정신은 차차 회복되었지만 신장기능마저 좋아지지는 않았다.

결국 장모님은 작년 1월 15일에 아주 평화롭게 식구들과 이 세상과 이별을 하셨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별 뒤에는 자식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돌봄이 자리하고 있었다.

장모님의 장례미사와 모든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목요일 오후 6 시쯤 돌아가셨는데 토요일 아침에 장례미사를 하고 매장까지 마쳤으니

얼마나 순조롭고 매끄럽게 모든 과정이 이루어졌는지 모르겠다.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씨앗이 자식들 간의 화합이라는 꽃으로 피어난 것이다.

 

장례식을 마치고 하루나 이틀이 지난 뒤 조카 영진이가

식구들 페이스 북에

할머니 살아생전에 피어 있던

난꽃이 졌다며 꽃이 진 난의 사진을 찍어 올렸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이듬해 매년 자색 목련꽃을 피우던  우리 집 뜰 앞에의 목련 나무가 죽었다.

설명할 수는 없어도 이 모든 것이 꼭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큰딸 소영이에게 초대를 받았다.

1월 20일이 소영이 생일인데 처음으로 생일잔치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나는 처음이라고 기억하고 있는데 아내는 결혼한 이듬해에도 초대한 적이 있다고 정정해 주었다.)

늘 바빠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긴 했지만

얼마나 바쁘면 그럴까 하며 애써 서운한 감정을 누르며 그날을 보냈다.

자기 일에다가 세 아이를 건사해야 하는 엄마로서의 의무를 완수해야 하니 늘 바쁘고 힘이 들 것이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잔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작년에는 큰딸이 생일에 모두를 초대한 것이다.

소영이가 할머니의 삶을 되씹어보면서

희생을 통해 구현된 사랑이라는 가치를 발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시가 있는 밤껍데기를 까는 희생을 통해서  밤이라는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할머니의 아픔과 돌아가심, 그리고 자기 엄마와 엄마의 형제들이 하나가 되어

그 시간을 함께 함을 보고 깨달은  것 같았다.

자신의 시간을 투자함으로써 식구들과 함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삶의 교훈을 소영이는 얻은 것이다.

 

우리가 소영이 생일에 함께 시간을 보내고 온 그 이튿날엔가

소영이는 우리 식구 페이스 북에 메시지를 남겼다.

교사로 근무하던 학교의 자모회에서 선물로 준 난에서 꽃이 피었다는 내용이었다.

난꽃이 지자, 난꽃이 새로 피었다.

시간과 혈관을 잇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