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들 이야기

아들자랑

가을에 태어난 아이 2015. 2. 13. 02:21

큰 아들 준기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George Town Law School'에 합격했다는 거였습니다.

내 눈가가 촉촉히 젖었습니다.

자랑스럽다는 생각보다는

본인이 얼마나 기쁠까 하고 아들의 마음이 되어서였을 겁니다.

내가 눈물을 흘리는 걸 알았는지

아들의 목소리도 떨렸습니다.

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미국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숱한 인재를 배출한 학교에서 법을 공부한다는사실,

그리고 법을 공부하는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서라는 사실 때문에

더더욱 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돈입니다.

아내 말로는 일년 등록금이 6만 5천 달러랍니다.

생활비까지 합치면 10만 달러 정도가 필요합니다.

기쁨도 잠깐, 이젠 현실적인 걱정이 앞섭니다.

내 수입만으로 아들의 학비를 대는 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융자를 얻어야 겠지요.

아이들 다 보내고 좀 느슨해진 마음을 졸라 매야겠습니다. 

한 삼년 나도 열심히 일하다 보면

어떻게든 결말이 나겠지요.

그리고 아들이 공부하는데 쓰이는 돈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투자하는 것이므로

거록하고 의미 있는 돈이므로 나도 경건한 자세로 일하고

돈을 벌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나도 세상을 좀 더 낳은 곳으로 만든다는

작은 희망과 자부심을 갖고 말이지요.

예전에 썼던 글 다시 올립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 큰 아들 준기 이야기

 

 

 

 

 

 

 

   메릴랜드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아들 준기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내용인 , 자기가 다니고 있는 대학에 새로운 동아리를 만들어 자신이 회장이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준기가 회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편으로 놀라움과 기쁨으로 가슴이 뛰면서도,

  편으로는 준기가 어릴 적에 우리 가족 모두 준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가슴 아픈 기억 때문에 가슴  쪽이 아릿아릿했습니다.

  준기는 어릴 때부터 심성이  곱고 사근사근 붙임성이 좋아서 위의 딸들보다  귀염성이 있었습니다.

 번은 아내와 함께 베어마운틴으로 하이킹을  적이 있었습니다.

위의 누나들은 따라나서질 않는데도 준기는 같이 가겠다고 해서 데리고 갔는데 그날따라 가랑비가 내렸습니다.

날도 잔뜩 흐린데다 다섯  짜리 준기까지 데리고 산을 오르다 보니 중간에 그만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사실 그리 어려운 코스는 아니었어도 길이 아닌 길을 가다보니  작은 가시나무도 헤쳐야 했고 미끄러운 바위도 기어올라야 했는데

준기는 가시에 찔리고 넘어지면서도 보채거나 불평  마디 없이 정상에까지 올랐습니다.

힘든 길을 아무 불평 없이 같이 해준 준기가 너무 대견해서 내려올 때는 준기를 목마를 태우기도 하고 업기도 하면서

 길을 돌아  싹이 파릇파릇 돋는 나무와 꽃들과 눈맞추며 차도로 걸어 내려왔습니다.

 준기를 목말을 태웠는데 힘이 하나도 들지 않았고 개선장군처럼 뿌듯하고  행복한 마음만 그득했습니다.

 위에 태운 아들이 마치 겨울날 앙상한 나뭇가지에 내려 앉은  눈처럼 포근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이 바로 준기였습니다.

준기가 초등학교 일학년인가 이학년 때였습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가족 모두 모여 저녁기도를 하고 있을  바로  사건 터지고 말았습니다.

우리 식구의 저녁기도는 하룻 동안 일어났던  중에서 중요하거나 의미 있었던 일들을 가족들과 나누고,  주모경으로 마무리 하는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니 저녁기도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붙긴 했어도 기도보다도 가족끼리 모여 수다를 떠는 쪽에  무게가 실리곤 했습니다. 

그날 저녁 준기 차례가 되었는데 갑자기 준기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바보야,  아무 것도   아는  없어. 기도도   거야!”하면서 통곡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순한 양같은 준기가 저렇게 소리를 지르며 우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식구 모두는 어찌   모르고 당황했습니다.

환하던 집안에 갑자기 전기가 나간  같이 그저 멍할 뿐이었습니다.

아내도, 준기의 누나들도 모두 준기가  바보야?” “준기가 얼마나 똑똑하고 사랑스러운데  울어?” 하면서

사정 없이 울어대는 준기를 달래느라 정신들이  나갈 지경이었습니다.

기도고 뭐고  준기를 달래서 겨우 재우고, 우리 부부도 잠자리에 들었지만, 몸은 물먹은 솜처럼 피곤했어도 그리 쉽사리  속으로 빠져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준기의 울음 소리가 귓가에서 맴돌았습니다.

  일이 있고   내내 가슴 속에 먹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제대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주를 정신 없이 보내고 일요일을 맞았습니다.

아침 운동을 하고 준기와 함께 목욕을 했습니다.

주일날 아침 아빠와 함께 남자끼리 하는 목욕을 준기는 아주 좋아했습니다.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목욕을 하면서 준기를 가만히 안아 주었습니다.

 아빠는 준기를 사랑하는데 준기도 아빠 사랑해?” 준기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준기도 아빠 사랑하면, 기도시간에  준기가 그렇게 울었는지 말해줄  있어?” 

그랬더니 준기는 다른 아이들은 아빠들이 함께 놀아주어서 축구, 농구 야구 같은 운동도 잘하는데

자기는   아는  없어서 친구들 노는 사이에  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억을 되살려 보니,  저녁이 늦어서야 돌아오는 아빠를 기다리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준기가

 아빠, 오늘 피곤하지?”

라고 말하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아직 어리지만 아빠가 고생하고 있는 것을 걱정해주는 것으로 지레 짐작하고 속으로 기특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뒤집어 보니 피곤하지 않으면 아빠랑 같이 놀고 싶어 하는 준기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번은  아빠는  사무실에서  안하고 세탁소에서 일해야 ?” 하고 물은 적도 있었습니다.

나도 한국에서 살았으면 편하게 살수 있었지만

이민 와서 힘들게 사는  처지가 처량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하는  같아서 그냥 말머리를 돌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준기는 자기 아빠도 사무실에서 일하고 일찍 퇴근해서 자기와 놀아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심을 하고  주일에 이틀은 일찍 퇴근해서 준기와 놀아주기로 했습니다.

일찍 자리를 비워서 생기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무엇이  중요한가를 생각해보니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 답은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보상은 서서히 찾아왔습니다.

준기가 자신감을 찾고 친구들과도  어울리며 활기를 찾아갔습니다.

친구들의 부모들도 준기 칭찬을 많이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본래 칭찬에 인색하지 않고  헤픈 것을 감안해도 주위에서 모두들 가까이 두고 친구하기를 원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비록 학과 성적이 뛰어나진 않아도 고등학교 입학해서 4 내내 학교 테니스 대표선수를 지냈고

악기중에 Oboe 열심히 해서  저지  스테이트 오케스트라에도 선발되어 우리 부부에게 기쁨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런 준기가 이번에는 동아리의 회장이 되었다는 소식으로   우리 부부를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아들과 눈을 맞추고서야 비로소 아들의 마음과 만날  있었습니다. 

진실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입니다.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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