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버지의 위스키

가을에 태어난 아이 2015. 1. 27. 12:30

 

 

한국에 올 때면 비행기 안에서 파는 면세품 중 

위스키 한 병을 사곤 했다.

그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의 일이다.

 

부모님을 찾아 뵈면서

난 위스키 한 병으로 내 한 해의

자식으로서의 의무를 완수하는 셈을 쳤다.

슬그머니 내미는 위스키 한 병에

아버지는 '이런 걸 뭐하러 사오느냐고'하셨지만

속웃음을 감추는데는 늘 실패하셨다.

아버지가 세상을 뜨신 후론

비행기에서 내릴 때

양주가 든 플라스틱 백이 들렸어야할 왼 손이 늘 허전했다.

왼 손에 든 양주 한 병의 무게는

내 마음 뿐 아니라 아버지 마음도

그득 채워줄 정도로 묵직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뜨신 지 삼 년,

그렇게 빈 손으로 난 두 해를 한국에 왔다.

내 빈 손처럼 내 마음도 그렇게 허전했다.

 

그래서 난 어제

아버지 생전에 늘 사던

Chivas Regal 18년 짜리 한 병을 샀다.

한 손엔 짐가방을 끌고

다른 한 손에 든 위스키 때문인지

내 마음이 풍선처럼 흐뭇하게 부풀어 올랐다.

 

집에는 이제 그 위스키를 드실 아버지는 계시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고 이 위스키는

누군가의 입 안으로 흘러 들어갈 것이다.

 

아무렴 어떠랴,

내가 아버지를 그리는 마음이 남아 있고,

누군가가 그 위스키를 마시며 행복해질 생각을 하며

아버지가 안 계신 허전함을 떨쳐버릴 수 있으면 그만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