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가을에 태어난 아이 2014. 12. 24. 22:52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지난 토요일엔 우리집에서 구역 모임이 있었다.

평소보단 여유를 갖고 출발했지만 

가게에서 윌리암스버그 다리까지 가는 동넷길이 북새통을 이루어서

예상보다 많이 늦어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기도회는 시작이 되었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윗층으로 올라갔다.

큰딸과 손주 Sadie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부르클린에 나와 있는 동안 늘 그리워하는 Sadie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아이를 안으려는 순간 

큰 딸이 앉아 있던 자리 옆에 놓여있는 테이블 위의 빨간 장미가 눈에 들어왔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딸에게 물었다.


"웬 장미니?"


큰 딸아이는 꽃을 꽂아놓고 그걸 바라보기 보다는

그 시간에 미식축구를 모며 열광하는 쪽이기에

꽃과 큰 딸이 같이 있는 풍경은 영 생소했다.

어쩌다 아이를 침대에 눕히려 올라가 보아도 

거실에 꽃이 있는 광경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장미 다발이 흐드러게 장식이 된 거실 풍경은 

둔감한 내 눈에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Sadie가 동생을 보게 될 것 같아요."


내 정신이 잠시 정전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말 하지 못했다.


딸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엄마인 아내에게 알렸고,

아내는 딸의 마음을 밝게해주려고

장미 몇 다발을 사다가 축하를 해준 것이었다.


엄마인 아내의 반응에 비해 아빠인 나의 반응은 

싸늘하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무심하다고 해야 할까?-딱히 무어라고 규정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큰 딸은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

Tenure를 받아야 하는 과정이 남아 있어서

혹시 아이를 낳는 것이 그 일에 지장은 되지 않을까.

Sadie가 아직 어린데 또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얼마나 딸에게 부담이 될까, - 이런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걱정들이 내 머리를 먼저 스처갔기에 

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순간을 흘려보냈던 것 갔다.


그런 어정쩡한 나의 반을은

비단 딸 아이의 경우 뿐 아니라 

아내가 나에게 임신 사실을 알릴 때마다

거의 비슷하게 반복되었다.

아이를 가진 당사자들의 마음도 혼란했을 텐데

아무런 반응이 없는 나 때문에 얼마나 더 참담한 기분이 들었을까-------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멍해진 것은 

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수입이 충분하지 않은데 아이 하나가 태어나면

어찌 삶을 꾸려나갈 건지,

또 아이를 위해 희생해야할  많은 것들이 

새 생명에 대한 기대나 기쁨보다 먼저 내 안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으로 기뻐해마지 않아야 할 소식을 맞이하게 했던 것 같다.

따라서 불안한 마음을 무덤덤으로 가장한 표정에 숨기며 

축복의 그 시간들을 난 애써 눈을 감고 흘려보냈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란 걸

아내의 임신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의 반응을 되짚어보니 알 수 있었다.


딸의 임신 소식에 다음날까지  마음이 어두웠다.

내 감정이 정리되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일요일 미사에 다녀와서

마음이 말끔하고 환해졌다.


대림 4주 복음 말씀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이 불이나갔다가 다시들어온 것 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천사가 하는님의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수태고지에

처녀인 마리아가 대답한 구절이 내 마음에 불이 들어오게한 것이다.


아무려면 처녀가 아이를 낳는 것에 비하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

주님의 뜻을 마음 속에 그대로 받아들인 마리아의 마음.

받아들이고 순종하면 그것이 구원이고 기쁨인 것이다.


사실 나의 환영을 받지 못했어도

우리 아이들은 내 기쁨과 행복의 원천이 되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손주 Sadie는 또 어떤가,

내가 늘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예수의 어머니가 그러했던 것처럼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은 받으면 기쁨이고 행복이 되는 것을-----


(아내와 딸에게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그동안 밀린 이 두마디를 아내와 딸에게 전해야 겠다.)


이번 주말 집에 들어갈 때는

빨간 장미 두 다발을 사서 

하나는 큰 딸에게, 

하나는 아내에게 선물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