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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5일 오전 06:55

가을에 태어난 아이 2014. 7. 25. 07:49

아내가 일이 있어 맨하탄에 나갔다 들어오면서 아파트로 가기 전에 세탁소에 들려 작은 봉지를 하나 내밀었다.
햄버거였다. 오후 한 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갑자기 웬 헴버거?"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일을 다 보고 맨하탄에 있는 'Eataly' 건너 편 공원에 있는 'Shake Shack'라는 햄버거 가게에서 사 온 것이었다.
아내는 마침 점심시간이 걸려 있으니 아파트로 오는 길에 내게 별식을 맛보게 해주려는 의도로 햄버거를 사왔을 것이다.
워낙 장사가 잘 되니 주문을 하는 것도 2-30 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는 귀가 아플 정도롤 들어온 터였다.
그러니 그 햄버거로 나에게 점심식사로 깜짝 선물을 하려고 했던 것이 틀림 없었다.
ShakeShack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들에게 들어서 이미 이름은 익숙하던 터였다.
우리 아이들도 그 맛이 환상적이라는 걸 누차에 걸쳐 이야기를 한 것을 기억한다.
그러니 언제고 기회가 되면 그 환상적인 맛을 한 번 보고야 말리라 하는 결심 아닌 결심을 했고
그 명성을 들을 때마다 갱신을 하곤 했다.
그런데 바로 그 고결한 햄버거를 눈 앞에 두고 있으니 그저 감격에 또 감격을 했음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갈 것이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햄버거를 사기 위한 줄은 가게 밖까지 이어져 길이가 줄어들 줄을 모른다든지 하는 류의 찬사는
이미 Shake Shack의 햄버거를 신화 내지는 신앙의 경지에까지 올려 놓은 상태였다.
아주 경건하게 한 입을 베어 물었다.
그러나 아무리 맛이 있어도 햄버거는 햄버거였다.
앞으로도 마님께서 드시겠다면 그 긴 줄도 마다하지 않고 기다렸다가 햄버거를 사 올 것이나
나를 위해서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내가 아무 준비 없이 차려주는 한 끼 식사가 훨씬 더 좋다.
일주일 동안 말라스카 크루즈를 다녀오는 동안 참 맛 있는 음식을 많이 먹었다.
매일 새롭게 바뀌는 메뉴 따라,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호화롭고 맛 있는 음식을 골고루 야무지게 먹었다.
그래도 아내의 된장찌개 맛에는 그 모든 음식의 맛을 다 합쳐도 비교의 대상이 되질 못했다.
나는 어디 외식을 하고 돌아오면 늘 아내에게 말을 하곤 한다.
"아무리 그래야 당신이 해주는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이 있다."고.
처음엔 좋아하는 것 같더니 요즈음은 아내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반응이 신통치 않은 건 둘째 치고라도 카운터 펀치가 날아온다.
평생 자기를 부려먹으려는 수작이 아니냐는 것이다.
태극기와 성조기 다 걸어 놓고 맹세를 해도 정녕코 아내를 부려 먹으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렴, 우리 마님께 언감생심, 어찌 그런 불경한 마음을 갖을 수 있단 말인가.
조금의 과장도 섞이지 않은 충심을 몰라 주니 그저 망극할 뿐이다.
언제고 진실한 나의 마음이 빛을 볼 날이 올 것이다.
오늘도 햄버거를 다 먹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긴 시간 기다려서 사 온 성의를 보아서라도
햄버거의 맛이 기가 막히다고 말을 했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들기는 들었다.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당신이 해주는 음식에 비하면 별 것 아니라는 투의 반을을 보였어야 했다.
그러나 자칫 평생 자기를 힘들게 하려 한다는 투의 한탄이나 핀잔을 되받아야 할 위험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맛 있다는 반응을 보이면 아주 빈번하게
햄버거가 아내가 차려주는 점심 밥상에 떠억하니 오를지도 모르는 불안감 때문에 입들 닫았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Shake Shack의 햄버거는 신화로 남았어야 했다.
두고두고 생각만으로 맛 있고 흐뭇하게 배가 불러지는 환상의 햄버거로 말이다.
에덴 동산의 그 과일도 이브와 아담이 그 맛을 보고는 모든 게 엉망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성경에 그 과일 맛이 죽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는 언급은 눈을 씼고 보아도 나오질 않는다.
그 과일 맛도 그렇고 그랬을 것이다.
상상, 혹은 신화로 남았으면 그 과일도 영원히 상상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이는 성스러운 대상으로 남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살아 있는 동안 아내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한끼라도 더 아내의 밥상을 받을 수 있는 묘수는 정녕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