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봄은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된다.

가을에 태어난 아이 2014. 3. 19. 20:19

 

봄은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된다.

 

 

 

snow drop

 

crocus

 

아주 긴 터널을 지나온 것 같다.

유난히 길었던 지난 겨울은

질기게도 추웠고 어두웠다.

봄이 올 희망 같은 건 아예 품지 말라는 듯이

3월 중순이  다 된 지금까지도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주일, 

집 앞의 화단을 둘러 보았다.

봄의 징후를 찾아보려는 간절함을 가지고

흙 사이사이를 뚫어져라 보았지만

화단 안에는 아무 것도 싹을 틔우지 않았다.

아직 봄은 멀었다고 실망스럽게 고개를 돌리려는데

마침 화단의 경계를 벗어난 곳에

대 여섯 군데

snow drop이 무리를 지어 피어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있음에도

기특하게도 언 땅을 뚫고

 푸릇푸릇한 잎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더니 

방울 같은 흰 꽃을 피워낸 것이 아닌가.

 

꽃이 눈같이 희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지어졌는지,

아니면 눈 속을 뚫고 꽃을 피워내서

그리(Snow Drop) 불리우는지 모르겠다.

 

초록색 잎에 흰 꽃망울.

 

청초한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자니

밝은 빛이 내 가슴 가득 밀려 들어오는 것 같았다.

 

 

올 해도 어김 없이 Snow Drop은

반가운 손님처럼

나를,

내 집을 다시 찾은 것이다.

 

 Snow Drop은

내 검지 손가락만큼 밖에 키가 자라지 않으니

부러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

눈에 잘 띄지 않는 식물이다.

 

그러니  Snow Drop과 눈을 맞추려면

나직하게 땅에 엎드리는 수 밖엔.

 

숨을 죽이고 흰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살짝 벌어진 꽃 잎 사이로

초록색 하트 무늬가 언뜻 보였다.

 

그래, 그대는 희망의 멧세지를

가슴에 품고

나를 찾아온 귀한 봄의 전령인 것이다.

 

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

봄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이들에겐

Snow Drop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혹독한 겨울을 겪은,

그래서 몸과 마음이 몹시 추운 이들,

가장 낮은 곳에서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Snow Drop은 나즈막히

이제 봄이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봄은 요란하지 않게 은근히 우리에게 온다.

 

봄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

가장 낮은 곳에서

흙과 눈을 맞추고

가슴을 맞대는 사람들에게만

봄이오고

봄이 봄일 수 있는 것이다.

 

어둡고 긴 겨울을 견딘 그대,

봄을 만나고 싶은가.

그러면 대지의 가장 낮은 곳을 골라

넙죽 엎드려 보라.

 

봄은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그리고 가장 낮은 자에게 찾아 오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