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
춘래불사춘
봄이 영 아니 올 줄 알았다.
유난히 춥고 길었던 올 겨울.
모든 것이 얼어 붙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밤새 내려간 기온 때문에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의 표면이 얼었다.
밟으면 눈이 깨지며 발이 눈 속으로
푹푹 가라 앉았다.
축구를 포기해야만 했다.
3월도 1/3 이나 지났는데도 도대체 봄은
어디까지 와 있는지,
봄이 오기는 오는 것인지 조바심이 났다.
50보다는 60이 훨씬 더 가까운 삶을 살았고,
그 만큼의 겨울을 맞고 또 그 만큼의
봄을 맞이했으면
이젠 듬직하게 기다릴 줄 알면 좋으련만
아직도 마음을 채근하는 걸 보면
나이만 먹어가지
나이테 하나 올골차게 만들지 못한
세월을 산 것 같다.
봄을 맞는 내 태도는 늘 이런 식이다.
다른 계절이야 그리 조바심을 하며
기다리질 않는데
유난히 봄을 기다리는 마음만은 조금하기만 한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봄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부리는 마술.
봄이 온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내 평생 봄을 제대로 만나기나 한 것인지------
올 봄도 또 마법에 걸린 것처럼
그렇게 봄을 맞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런 몽롱한 시간 속에
어느새 봄날은 또 갈 것이다.
계절을 맞고 또 보내는 일,
세월을 살아가는 일,
이 모든 것이 다 아지랑이처럼
몽롱하기만 하다.
봄이 온 것인지---------
우리집 뒷 뜰
아직도 눈은 무릎 반까지 쌓여 있다.
겨울의 흔적이
아직도 뚜렷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살랑이는 나뭇가지에
불그스름한 나무 꽃이 피었다.
홍역처럼 열꽃이 피어날 것이다.
비록 땅 위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쌓여 있더라도-----
앞뜰에는 눈 녹은 자리에
snow drop이 고개를 내밀었다.
푸릇푸릇 초록색 잎과 줄기에
눈처럼 흰 순백의 꽃이 피어난다.
사춘기 소년의
코밑에 거뭇거뭇 수염이 돋아나듯,
그렇게 파란 싹이 군데 군데 돋아났다.
봄이 온 것이다.
잔디밭 가장자리엔
아직도 눈이 높이 쌓여 있다.
그래도 빈 자리부터
봄은 슬금슬금 발을 딛고
우리 곁으로 오고 있다.
아니 벌써 우리 곁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