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있는 사람들
*서있는 사람들
몇 주 전인가 미사 시간에 늦었습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미사에 빠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미사 시간에 늦는다는 사실조차도 용납할 수 없는 나에게 그건 무척이나 큰 사건(?)이었습니다.
그 주일엔 친정 부모임에 계신 아리조나로 떠나는 아내를 따라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난데다,
아침 나절에는 축구까지 빡세게 해서안지 점심 식사를 마치고 설겆이까지 하고 나니
도저히 눈꺼풀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 전 주에 쌓인 피로까지 덩달아 눈꺼풀에 달라붙어 그 무게를 더한 듯 했습니다.
그래서 잠시 쉰다고 눈을 붙였는데 눈을 떠 보니 아뿔사 미사 시작까지 20여분 밖엔 남지 않았습니다.
한 쪽 뺨에 남아 있는 베겟자국은 누가 봐도 ‘나 낮잠 잤습니다’하고 광고라도 하듯이 선명했습니다.
이럴 때는 체면이고 뭐고 없습니다.
군대의 5분 대기조처럼 민첩하게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우리 동네 기찻길에서 멈춰서야 했습니다.
이런 날은 모든 일이 협조해서 저를 힘들게 합니다.
기차가 내 조급한 마음과는 상관 없이 한 없이 여유를 부리며 지나가는 겁니다.
털커덕 거리는 기차 소리가 얼마나 늘어지는지 진양조의 판소리 가락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기차가 지나간 것 같은데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그때부터 세었는데도 기차의 수가 백 량이 넘었습니다.
제한 속도를 지키며 마음만 조급해서 성당에 도착하니 신부님과 복사단이 막 입당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성당 근처엔 차를 세울 곳이 없어서, 길 건너 중학교 옆길에 파킹을 하고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미사에 방해되기에 미사가 시작되면서 닫아 잠궈버린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미로를 헤매듯 어둔 고해소를 지나 성당 안에 들어가니 이미 뒷자리는 거의 다 찼습니다.
안내하는 분께서 앞에 자리가 많이 비었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서까지 앞으로 갈만한 숫기가 제겐 없었습니다.
튼튼한 두 다리를 주신 것을 주님께 감사드리며 작은 속죄라도 될까해서 선 채로 미사를 드리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데 제 뒤로도 열 댓 분의 신자들이 늦게 성당으로 들어왔는데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온 부부들이 꽤 되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제 자신도 미사 시간에 늦었으니 동병상련이라고
‘아이 데리고 얼마나 분주했을까’, ‘오죽하면 미사에 늦을까’ 하는 아릿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여럿 키우다 보니 성당 가려고 집을 나서면 때맞춰 기저귀 갈 일이 자주 생긴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그러면서 이런 신자들을 위해 뒷 자리 몇 줄은 비워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피치 못해 늦는 신자들 뿐 아니라 냉담 중인 신자, 그리고 아직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라도
빈 자리를 남겨두면 참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는 그 자리가 가득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빈 자리를 보며 기도해야겠다는
제법 기특한 마음이 든 것은 오로지 미사시간에 늦어서 선 채로 미사를 드린 덕이었습니다. .
미사에 늦지 않고 편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미사를 드릴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뒤에 서서 미사를 드릴 때 보였습니다.
그리고 깨닳았습니다.
내 자신이 편하게 앉아서 미사를 드릴 때,
누군가는 서서 미사를 드리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자리가 없어서 되돌아갔다는 사실을---------
미사 내내 혹시 제 자신이 성경 속 ‘돌아온 탕자’ 이야기에 나오는 바로 탕자의 형같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반성도 했습니다.
집을 떠난 동생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관심도 없이
오로지 자기 혼자 아버지의 사랑과 재산을 다 차지하려는 욕심 많고 또 한 없이 인색한 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뒤에, 혹은 늦게 오는 형제, 자매가
마음 고생하지 않고 앉을 수 있도록 앞 자리부터 채워서 앉는 마음,
그리고 빈 자리를 두고서도 서서 미사를 드리려는 마음들이 모이면
그 자체로 ‘산 제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빈 자리는 보이지 않는 우리 형제들을 위한 자리이며,
동시에 예수님께서 앉으실 자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자리를 비우고 서 있는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초대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감실 밖으로나오셔서 그 빈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리라 믿어집니다.
많은 성당에서 성전 마련을 위한 바자를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성당도 10월이면 바자를 합니다.
우리들끼리만 좀 더 쾌적하고 안락하게 미사 드리고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고
‘빈 자리’의 주인들을 위해서 마음을 쓰는 바자가 되면 좋으리라는 희망을 갖습니다.
고단하지만 빈자리를 위해 기꺼이 ‘서 있는 사람들’이 많은 공동체를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셨던 하느님께서 똑같은 방법으로 이끌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서 있는 사람들’은 70년대 발간된 법정 스님의 수상집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저희 본당의 교중 미사는 오후 5시 15분입니다. 이민 교회이기에 미사 시간이 오후로 밀려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