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화 내다 버려요!
축구화 내다 버려요!

어제는 마지막으로 축구를 했다.
몇 달 전에 베란다 구석에서 축구화를 비롯한 축구 장비를 발견한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이런 것들은 내다 버려요!"
사실 축구를 마지막으로 한 것은 약 4 년 전이었다.
4 년이라는 기간 동안
거처를 뉴저지에서 부루클린으로,
그리고 다시 현재 살고 있는 Rockaway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를 겪어야 했다.
코로나 기간 동안 당연히 축구를 하지 못했고
그 어두운 코로나의 터널을 지나서도 지리적인 거리 때문에
축구를 할 수 없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 계절 중 어느 하나를 거르지 않고
일요일 아침마다 만나서 축구를 하던 시간은
몇십 년 동안 내 삶의 가장 소중한 기쁨의 시간이었다.
동료들과 땀을 흘리며 함께 달리며 공을 차는 시간도 소중했지만
쉬는 시간 동안 한국어로 나누는 잡담마저도
남자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해방구가 되었다.
말하자면 축구는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지켜주는 운동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애정하는 축구 장비를 내다 버리라는 아내의 말씀(?)은
내게는 마음에 간직한 애틋한 사랑 하나를 포기하라는 대법원 선고 같이 생각되었다.
사실 내다 버리라는 축구화는 둘째가 특별히 아빠를 위해서
오레곤 주에 있는 아디다스 매장에서 사다 준 것이다.
딸아이의 마음까지 담긴 축구화를 갖다 버리라는
아내의 말은 내 마음 안에 작은 서운함이라는 상처를 남겼다.
물론 사용하지도 않는 물건을 집 안에 둔다는 것이
삶의 이치에 맞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물건보다 축구 용품을 포기하는 것은
내 꿈이나 사랑하는 것들의 리스트 중 하나를 포기하는 것처럼 내게는 슬픈 일이었다.
그래서 아내의 명을 거역하고 그것을 고이 보존하다가
드디어 어제 마지막으로 신고 입고서 축구를 했다.
마지막 축구였다.
낯선 얼굴도 있었지만 대부분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축구를 했던 친구들과
아주 즐겁게 땀을 흘렸다.
누군가 필요한 사람을 위해
내 축구화를 팀에 남겼다.
이제 내게 남아 있는 축구 용품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것들이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추억이 깃든 시간과 그 시간을 함께 했던 소중한 동료들과의 우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축구와 이별하는 서운함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이런 것들이 모여 삶이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