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성적표
건강 성적표
지난주에 의사 선생님을 보고 왔다.
8 월 초에 건강 검진을 받고 그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서였다.
말하자면 건강에 대한 시험을 보고,
그 결과를 보러 간 것이다.
의사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거의 15 년이나 되었다.
의료 보험이 있을 때도 의사를 거의 찾지 않았는데
12 년 전에 의료보험을 해지하고 나서는
더더욱 의사를 볼 일을 만들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살면서 의료보험을 들지 않는 것에 대해서
우려가 깃든 비난을 한다.
우리 같은 중산층이 의료보험 없이 미국에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미국에 사는 사람은 안다.
정확한 건 모르지만 보험 없이 앰뷸런스를 타면
약 천 오백 달러의 청구서를 받는다고 한다,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고도 병원에서 하룻밤을 지내면
최소 3 천 달러를 내야 한다.
아주 가난하면 메디케이드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잘은 몰라도 메디케이드 수혜자는 이 모든 의료 혜택을 거저 받을 수 있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이 덜컥 뼈라도 부러져서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 응급실에 간다면
의료비용은 상상만 하는 것도 두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한 달에 천삼백 달러가 넘는 의료보험을 감당하는 일은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테러와도 같아서
고심 끝에 막내가 해병대에 입대한 뒤에
의료보험을 해지했다.
그때 내 나이가 쉰 하고도 몇이었을 것이다.
십몇 년을 조심하고 또 잘 버티면
만 65 세부터는 메디케어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가계에 큰 부담이 되던 의료보험을 무 자르듯 숭덩 잘라버린 것이다.
그런데 운이 좋았다.
의사를 볼 일도 없었고 더더욱 병원에 갈 일은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작년에 메디케어의 혜택을 받기 시작했고
아내도 올해 메디케어 수혜자가 되었다.
나는 지난 1 년 동안 메디케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고
보험회사에서 부수적으로 제공하는 혜택도
나의 무지로 전혀 누리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가 모두 메디케어 혜택의 범주 안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해서 월 초에 주치의를 찾아 건강검진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내 몸에 별 이상이 없음을 알면서도
마음속에 불안함이 막걸리 병 안의 앙금처럼 가라앉아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 불안함은 검진 결과를 보러 가는 날 아침 최고조에 이르렀다.
"혹시 나도 모르는 새 암세포가 내 몸에 자라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럼 앞으로 무얼 어떻게 해야 하지?"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하지?"
파킹장에 주차를 하고 오피스로 올라가는 2-3 분의 시간이
안단테의 속도로 흘러갔다.
결국 따뜻한 인상을 가진 주치의 선생님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환자 신상 보호를 위해서일 것이다)
경기를 잘하고 이길 거라고 마음속으로 예상을 하지만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심판의 판정을 기다리는
운동선수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 시간이었다.
결과는 거의 완벽했다.
혈당이나 콜레스테롤 같이 내가 아는 수치부터,
뭐가 뭔지 모르는 수치까지
다섯 페이지에 달하는 나의 건강 성적표는
거의 100 점이었다.
단지 좋은 콜레스테롤의 수치가 조금 좋다는 것 하나가
흠결(?)이라면 흠결이었다.
결과를 듣고 난 순간,
내 입에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샘물처럼 속아 나왔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믿지만
십수 년 동안 마음속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옅은 불안의 색조가
해가 뜨며 사라지는 안개처럼
그렇게 깨끗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아내가 집에서 해주는 건강한 음식과
시간과 땀을 흘려 거르지 않고 하는 운동이
이런 성적표를 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 달란트의 비유가 나온다.
내가 받은 몸의 상태는 몇 달란트의 가치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폐기능이 약하게 태어났다.
어릴 적에는 감기를 달고 살았다.
열심히 달리고 땀을 흘린 덕분에
지금은 누구보다 건강한 폐를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몸도 마음도 내가 받고 태어난 본전에
내 노력과 정성으로 이자를 보태며 살다가
그 합쳐진 자산을 가지고 죽음을 맞아야 하는 것이 삶이라는 걸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내 육신의 삶은
정상을 넘어 내리막길 어디쯤을 가고 있을 것이다.
은혜롭게도 건강한 몸으로 살고 있으니
이제는 내 정신과 영혼의 건강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할 것 같다.
오늘은 바닷가를 걸으며
내 영혼의 성적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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