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ga House의 물망초
아내가 Vega House에 가자고 했다.
Vega House에 물망초가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Vega House는 아내를 언니라고 부르는 에스터의 별장(?)이 있는 곳이다.
별장이라고 하니 다소 거창하고 호화롭게 들릴지 모르나
트레일러 하우스에 불과하다.
트레일러 하우스라고 하니
트레일러 하우스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일단 눈을 아래로 깔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Vega House가 트레일러 하우스라고 해서
함부로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
값을 매길 수 없는 자연 속에 폭 안겨 있기 때문이다.
호화롭지 않아도 아늑하고
시설이 빈약해도 편안하기 이를데 없다.
이 집에 들어가면 근심이나 걱정 같은 짐이 사라진다.
그러니 Vega House를 값을 따져서 평가하는 일은 참으로 부질없다고 할 것이다.
누가 Vega House라는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지만
나에게 부탁을 했다면 'Trevi Casa'라고 작명을 했을 것이다.
로마의 트레비 분수를 연상하게 하는 'Trevi'와
집을 의미하는 'Casa'를 결합한 것이다.
굳이 한국말로 풀이하자면 '삼거리 집'이다.
(트레비가 삼거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집의 뒤쪽이 산인데 아마 이 산의 이름이 'Vega Mountain'일 것이다.
왜냐하면 'Vega House' 바로 앞에 있는 길 이름이 'Vega Mountain Road'인 것으로 미루어
그리 유추할 수 있었는데 사실 관계는 알 수 없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뒤 편으로는 산으로 이어지고
앞으로는 제법 널찍한 초지와 목장이
눈 아래 펼쳐져 있어서 갑갑하지 않고 눈이 시원해지는 풍경을 제공한다.
그리고 초지와 길이 끝나는 곳에 다시 산이 자리하고 있어서
사시사철 다른 풍경을 제공하는 유리창 때문데
집 안에서도 각기 다른 계절의 맛과 멋을 즐길 수 있다.
이른 새벽에 출발해서
'Vega House'에 도착하니 아침 여덟 시가량 되었다.
차에서 내리니 섬뜩할 정도로 한기가 느껴졌다.
여름이 다 된 뉴욕 시와는 달리
그곳은 한 두 주 쯤 전부터 봄이 시작된 듯했다.
에스터가 준비한 카피와 카푸치노를 마셨다.
왜 별장에서 마시는 커피는 맛이 있을까?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걸 좋아하는 나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걸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
그냥 맛이 있다.
에스터가 준비한 싱싱한(?) 아침 식사도 했다.
Vega House의 뒤뜰에는
내가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풍성하게 물망초가 무리를 지어 피어 있었다.
누가 심지도 않았는데
어디선가에서 날아온 꽃씨가 피어나
물망초 군락을 이루었다고 한다.
나무 장작을 쌓아 놓은 곳 부근에도,
창고 뒤에도 소담스레 물망초가 피어 있었다.
심지 않고,
또 누가 보지 않아도 피어나는 들꽃으로 해서
에스터네 별장의 뒤뜰은
그야말로 '하느님의 정원'이 되었다.
아내는 잊지 못할 누군가가 있어서
물망초 피어 있는 Vega House를 찾았던 것일까?
흐린 하늘 아래에서 물망초가 잔물결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고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싶을 때는
언제 어디서든지
Vega House의 뒤뜰에 원 없이 피어 있던 물망초가 떠오를 것이다.
내년에도
그리고 또 그다음 해에도
물망초는 피어나 바람에 흔들릴 것이다.
잊지 말라고,
기억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