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에게 뀌는 알랑방귀- 올해의 사위상 후보 Brian
사위에게 뀌는 알랑방귀- 올해의 사위상 후보 Brian
지난 토요일 아침 둘째 딸 지영이네 집을 방문했을 때
아파트 문 앞에 서니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내와 나는 둘째 부부의 브런치 초대를 받고
두 번째 방문을 한 것이었는데
문 안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로 환영을 받은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작년 2 월에 둘째네를
처음 방문했었다.
동물 보호소에서 입양해서 키우던 반려견 클레멘타인이
여러 가지 병으로 고생을 하다 세상을 떠났는데
그 슬픔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던
둘째 부부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첫 방문을 마치고 아파트 문을 닫고 나오는데
지영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울음소리가 사라지는데 참 긴 시간이 걸렸다.
둘째의 슬픔은 내 가슴속에서도
오랫동안 울음소리로 메아리쳤다.
심리 상담 및 치료사인 본인도
정작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약도 먹고 상담사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세월이 가장 용한 약이 되었던 것 같다.
울음소리 가득하던 1 년 전 둘째네 아파트가
이젠 웃음소리로 대체되었으니
시간의 치유력에 새삼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업었다.
그런데 둘째는 어릴 적부터 겁도 많고 마음이 여렸다.
그러니 반려견의 죽음 때문에 거의 반년 이상 마음을 앓았던 것이다.
우리가 살던 Harrington Park 집 건너편에는
노부부가 살고 계셨는데
부인은 정신과 의사였다.
그분은 이층의 방 하나를 진료실로 사용했는데
거기서 늘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지영이는 그분에게서 영향을 받았는지
어릴 적부터 정신과 의사가 되어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는 걸 장래 희망으로 삼았다.
그런데 어느 날 지영이의 꿈에 금이 가는 일이 생겼다.
정신과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해부학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적잖이 실망을 하고 꿈을 고이 접어야 했다.
정신과 의사 대신
해부학이라는 끔찍(?)한 과정을 거차지 않고도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심리 상담의 길을 가기로 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위 Brian은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tv가 틀어져 있었는데 Liverpool의 축구 경기가 방송되고 있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장인을 위한 Brian의 마음씀이었다.
Brian이 내려준 커피는 내 입맛에 꼭 맞았다.
이런 때 나의 혀와 입술은 활동을 시작한다.
말하자면 순간을 놓치지 않고 lip service를 한다는 말이다.
-Brian, 마이더스의 손처럼 네 손은 금손이야.
평범한 커피가 네 손을 거치고 나니 세상 최고의 커피가 되니 말이야.-
lip service라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것이
칭찬의 마력이다.
나는 내친 김에 아내 모르게 준비해 간 내 노트북을
사위에게 내밀었다.
아내가 알았다면 기를 쓰고 말렸을 것이다.
사위에게 조그만 부담도 주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다.
Brian은 대학 때 경제학을 전공하고
현재는 IT 관련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컴퓨터와 그와 관련된 문제 해결에는 단연 최고다.
내가 한 동안 해결하지 못해서 불편을 겪었던 문제를
Brian은 내가 숨 몇 번 쉬는 동안
뚝딱 해결해 주었다.
-역시 Brian네가 최고야. '올해의 사위상'은 현재 95% 네가 탈 거야.-
'올해의 사위상'(Son-in Law of the Year)은 내가 사위들 사이의 경쟁심을 유발하기 위해
임의로 만든 것으로 실체가 없다.
그러니 아직까지 이 상을 수상한 사위는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이런 나의 공수표를 Brian은
기분 좋게 받았다.
비록 공수표이긴 해도
이 공수표에는 내 마음이 담겨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지영이가 SVA(Scool of Visual Art)에 심리 상담 및 치료사로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심심치 않게 학생들의 자살 소동이 벌어지곤 했다.
특별히 동양계 유학생들 중에 극도의 불안과 강박증으로
자살 소동을 일으킬 때면
겁 많고 마음 여린 지영이는 책임감과 두려움으로
고통을 견뎌야 했다.
그런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영이 곁에서 위로와 힘이 되어준 사람이 바로 Brian이다.
아빠인 내가 마시지 못하는 쓴 잔을
지영이 곁에서 함께 마셔준 Brian에게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을까.
비록 '올해의 사위상' 후보로
제일 윗자리에 Brian의 이름을 임시로 올려놓긴 했지만
다른 사위들 또한 올해의 사위상 수상 후보이다.
나보다 현실적으로 우리 딸들을 더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이니
내가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고마워야 할 대상이 바로 사위들이다.
그 고마움을 표현할 재주가
마음이 담긴 lip service 밖에 없는 나로서는
'올해의 사위상' 후보를 입에 올리며
오늘도 사위들에게 알랑방귀 뀌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