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설날, 우리 설날
까치설날, 우리 설날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설이 가까워지면 듣게 되는 동요의 첫머리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65 년이 지났으니
내 지각이 깨어난 때 이후로만 셈을 해도
60 년은 빼먹지 않고 설이 되면 이 노래를 들었을 것이다.
이민 와서 살면서도
노래는 아니어도 활자로라도 '까치설날'은
설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내 삶 속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 세월 이 노래를 들으면서도
까치설날이 왜 사람들 설날 하루 전인 섣달그믐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떤 학자는
'작다'의 뜻을 가진
'아치'라는 말이 변해서
까치가 되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고
삼국유사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까치를
설과 연관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까치가 말 그대로
까치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예로부터 까치는 '반가운 손님'을 예고하는 새로 여겨져 왔다.
따라서 설이면 세상에서 제일 반가운 손님인
가족들이 모이니
까치가 아니 울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니 설 전에
까치는 이미 분주하게
기쁜 날,
좋은 사람들을 맞느라 미리 설을 준비하기에
까치설은 사람들의 설보다 앞서 오는 것이 아닐까?
어제 우리집에서도 설을 맞아
아이들과 손주들이 모여 설을 보냈다.
군인인 막내 아들은 빼고
딸 셋과 아들, 그리고 큰 사위와 며느리,
손주 셋과 우리 부부, 11 명이 모였다.
둘째 사위 Brian은 혼자 계신 아버지를 방문하느라고 오지 못했고
셋째 사위 Dan은 오후에 일이 있어서
우리와 함께 하지 못했다.
먼저 아이들과 손주들이 모두 모여
만두를 빚었다.
아내가 만두피와 소를 준비해 놓았는데
아이들은 그 재료로 자기의 손재주를 이용해서
만두를 빚었다.
특별히 손주들은 세살 먹은 Penny까지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서 만두를 빚는지
바라보는 내내 얼마나 흐뭇한지 몰랐다.
더군다나 만두를 빚으며
이어지는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만두 속까지 배어서
나중에 먹은 떡만둣국은
맛도 맛이지만 그 속에서 이야기와 웃음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떡만둣국을 끓이는 동안
윷놀이를 했다.
남과 여의 성대결로 펼쳐진 윷놀이는
여자 팀의 역전승으로 끝이 났다.
여자 팀의 대표 선수에게는
아내가 상금을 하사했다.
떡만둣국을 먹은 뒤에는
모두 한복으로 갈아입고 세배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빠 엄마에게
자녀들과 손주들이 세배를 했고,
아이들과 사위, 며느리가 서로가 서로에게 세배를 했다.
아내와 나는 어른 아이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준비한 세뱃돈을 주었다.
아내는 장을보고 만두소를 만들고
세뱃돈을 마련했다.
셋째 딸과 손녀 Sadie의 한복을 한국에 갔을 때 구입했으며
아이들 모두의 한복을 일일이 다려서
세배할 동안 잠깐 동안만 입을 한복에도
마음을 쏟았다.
아이들과 손주들은
그저 와서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며 떠들썩하게 웃었을 뿐이다.
아이들이 모여서
건강하게 웃고 떠드는 것 말고
이 세상에서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싶다.
부모들은
반가운 사람들이 찾아오길 바라며
365 일 설날보다는
정작 까치설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