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ia 국립공원에서 해맞이- 1월 1일
Acadia 국립공원에서 해맞이- 1월 1일
밤새 제법 비가 내렸나 보다.
아내는 자다가 빗소리에 잠시 깨었다고 한다.
미 동부에서 제일 북쪽에 속하는 Acadia 국립공원에
연말 연초의 비는 사실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그 지역에는 눈이 쌓여 있어야 했고,
사방 꽁꽁 얼어붙어 있어야 지극히 정상적이 풍경이었다.
우리가 침대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비는 그쳤다.
구름이 하늘의 9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해가 얼굴을 내밀 가능성까지 완전히 가린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둡고 조용하기만 한
새해 첫날 새벽 도로를 달려
Cadillac Mountain으로 오르는 입구로 향했다.
우리 숙소에서 가까운 곳의 입구는 차단이 되어 있었다.
입구 주변으로 열몇 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차를 주차하고 사람들은 산 정상까지 걸어서
올라간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걸어서 올라간 사람들은
아마도 구름 사이에서 얼마 동안
얼굴을 내민 빛나는 새해의 첫 해를 알현했을 것이다.
혹시나 해서 Cadillac Mountain 반대 편에 있는
정식 입구(Visitor Center가 있는)로 가보았지만
그곳도 도로 차단기가 무뚝뚝하게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산 정상에 이르는 도로는 아직 얼어붙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길이 워낙 구불구불하고 가파르니
안전을 위해 산 정상에 이르는 모든 길을 막아 놓은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오다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민 해의 용안을 잠시 알현할 수 있었다.
Bar Harbor에서도 몇 사람들만
해를 기다리고 해를 만났을 뿐이다.
숙소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하고
바로 다음 블록에 있는 성당에서
10시 미사에 다녀왔다.
낡고 조금씨 허물어져가는 성당 건물과 함께
보이지 않는 교회(신자들)도 건물처럼
노쇠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 새해 첫날의 내 마음에 그늘을 드리우게 했다.
미사를 마치고 우리는 숙소 주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호수로 향했다.
호수를 끼고 이어져 있는 숲길을 걸었다.
작년에 다녀온 제주의 '사려니 숲길'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숲은 대부분 침엽수와 지작나무로 이루어져 있었고
간혹 참나무도
자작나무처럼 잎이 다 떨어진 채 벌거벗은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바람이 몹시 불었다.
위로 올려다보면 침엽수를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이 보였다.
그리고 바람소리가 들렸다.
침엽수를 스쳐가는 바람소리는
마치도 무슨 필터를 거친 것처럼
부드럽고 은근했다.
숲 사이로 보이는 호수에도 파도가 일었다.
흰 말의 갈기 같은 파도가 숲 쪽으로 몰려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법 넓은 길로
사람들은 간간히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기도 하고
산책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조깅을 하기도 했다.
산책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잠시 쉬었다가 Bass Harbor Light House로 향했다.
숙소를 출발해서 약 30 분을 차로 달렸다.
차 십 여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 아래쪽으로 등대가 보였다.
내가 본 등대 중에 제일 작고 아담했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어서
그 길을 따라 내려갔더니 등대에 이를 수 없었다.
되돌아 나오다 보니 열려 있는 문에
사유지이니 들어오지 말라는 사인이 있었다.
등대 왼쪽으로 좁은 오솔길이 있었다.
오솔길 위로 나무가 있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얼마 걷지 않아서 벼랑 아래로 이르는 나무 계단이 보였다.
그 아래로 바위와 바다가 보였고
사람들은 갖가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데 푹 빠져 있었다.
해는 이미 서쪽 지평선 밑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나이 지긋한 부부가 우리에게
"한 발짝 늦었다."라고 위로를 건넸다.
바위를 건너뛰기도 하면서
아래쪽으로 내려 바닷물 가까이 갔더니
비로소 등대의 모습이 조금 보였다.
아침 해와 바다,
일몰과 등대.
사람들이 빛을 갈망하는 존재라고
나는 등대가 발하는 빨간 불빛을 보며 생각했다.
노을빛과 등대의 불빛.
그리고 순식간에
빛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러게 새 해 첫날의 새 해가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