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 수조에 수평선 긋기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 수조에 수평선 긋기
지난 일 년 반 정도 우리 콘도에 있는
gym에서 무던히도 긴 시간을 보냈다.
하루에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때로는 두 시간을
근육 운동을 했고 트레드 밀 위에서 달리기도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에 살면서
매일 꼬박꼬박 벽돌 한 장씩 쌓는 마음으로
땀을 흘렸다.
그 결과 팔과 다리, 등과 어깨, 가슴에
제법 윤곽이 뚜렷한 근육이 생겼다.
어디 그뿐인가.
약간 높다 싶었던 혈압도 정확하게 정상수치를
가리키는 부수효과도 생겼다.
5월엔 둘째 생일 선물로
딸네 집에서 우리 집까지 Half Marathon (20 킬로 미터가 넘는 거리)을
딸과 함께 뛰기도 했다.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에
건강 상태는 군대 다녀온 뒤로 올해 5월이
내 삶에서 최고였던 것 같았다.
그런데 한국에 다녀오기 전에 오미크론에 감염이 되었다.
근육통에 두통, 기침으로 고생을 했다.
당연히 매일 하던 운동을 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몸이 회복된 이후로도
다시 운동을 시작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국에 가서 제주 한달살이를 시작했다.
11월 제주의 기후는 적당히 아름다웠다.
거의 매일 오름을 오르고 숲길을 걸었다.
시내에서도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다.
제주에서의 한달살이를 건강하게 마무리지었다.
그런데 서울에 와서 4박 5일을 지낸 뒤
문제가 생겼다.
서울에 도착한 다음날 기온이 섭씨 영하 8도로 내려갔다.
제주에서의 온도와 서울의 그것 사이에 거의 섭씨 30도 차이가 났다.
온도 차이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
매일 친지들과의 만남을 이어가야 했다.
제주에서 자연과 함께 사는 것도 행복했지만
오랜만에 지인들과 만나
먹고 마시며 회포를 푸는 일이 흐뭇하고 즐거웠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기 이틀 전쯤에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몸살감기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 몸살을 내 몸에 달고 집에 돌아왔다.
증세가 그리 심하지 않았지만
살아가는 일이 시들하게 느껴졌다.
백수가 되었으니 매일 아침 출근해야 하는 부담도 없겠다,
거의 열흘을 넘게 집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몸이 회복이 되었어도
다시 운동을 시작하기가 싫었다.
그런데 빈둥대는 동안 책을 몇 권 읽었는데
그중 하나가 'Midnight Library'이다.
책을 읽는 중에
수조에 푸른 수평선에 그어 놓았는데
우울증에 걸린 물고기는 그 선 위로 올라오지 않는다는 내용에
내 눈이 고정되었다.
그런데 항우울제를 먹였더니 그 수평선을 넘어 넘어
물의 표면까지 헤엄쳐 올라오더라는 것이 내용이었다.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수조 속 바닥으로, 수평선을 그을 생각도 없이
그저 숨죽이며 가라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울증에 걸려 더 넓은 수조 속을 헤엄치지 않고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물고기 한 마리가
나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제저녁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하체는 예전과 별 차이가 없었으나
팔과 어깨, 등과 가슴의 근육은
운동을 하지 않은 이후로 30% 정도 소멸된 것 같았다.
더구나 무게를 들고 당기는 근력도 엄청 줄었다.
맥이 빠졌다.
시시포스의 고통이 느껴졌다.
정상까지 힘들여 밀어 올린 바위가
굴러 떨어진 느낌.
밑으로 내려가 다시 바위를 밀고 정상까지 올라야 할 때의
절망감이 들었다.
그러나 수평선 밑의 삶을 계속 살긴 싫다.
다시 수평선 위로,
그리고 수면까지 오르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망스러웠지만
운동을 마쳤다.
예전에 하던 무게와 횟수의 70%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트레드 밀 위에서 5 킬로미터를 달렸다.
전에는 30 분이 안 걸렸는데
40 분이나 걸렸다.
그래도 일단 운동을 마치니 기분이 좋았다.
수조에 그려 놓은 수평선.
일단 그 수평선까지 올라가는 일.
결심하고 새로 시작하기.
아무 생각 없이 다시 운동을 시작하기.
그리하여 항우울제를 먹지 않고도
수평선 위로 올라가기.
한 걸음 더 걷기.
한 계단 더 오르기.
아무 생각하지 말고 오늘부터 버릇 들이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