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子正), 그리고 25 시(時) 그 사이
자정(子正), 그리고 25 시(時) 그 사이
최근에 정말 가뭄에 콩 나듯 책 한 권을 읽었다.
''The Midnight Library'
Matt Haig라는 사람의 작품이다.
고등학교 동기들의 독서 모임인 '33 서당'의
11 월 독서 목록에 이름을 올린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나는 비록 독서 모임에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읽고 친구들과 가상의 독서 토론을 하고 싶었다.
책 한 권을 뚝딱 읽기는 했지만
머릿속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능력이 없어서
네이버에 있는 글을 빌려왔다.
영국의 베드퍼드라는 작은 도시에서 혼자 살고 있는 주인공 노라는 부모님을 모두 먼저 보내고 하나뿐인 친오빠와는 연락을 끊은 채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뿐인 친구는 오스트레일리아로 여행을 떠났고 베드퍼드에 혼자 남은 노라의 옆을 지키는 건 그녀의 고양이 볼테르뿐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우울한 날의 연속, 즐거운 일도, 딱히 슬플 일도 없는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녀의 집에 저녁 늦은 시간 '애쉬'라는 동네 수의사가 찾아옵니다. 애쉬는 동네에서 조깅 중 노라의 하나뿐인 친구 볼테르의 사고 소식을 전합니다. 도로 옆에서 죽어있던 볼테르를 발견하고 노라에게 소식을 알려줬고 정신이 없는 노라를 대신해 볼테르의 무덤을 파고 묻어주었습니다. 답례로 물 한 컵을 얻어 마시고 떠난 그. 그리고 혼자 남은 노라
노라가 캐셔로 일하고 있던 '스트링 시어링'에서 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이고 더 큰 세상에서 많은 일을 해보라며 다독이는 사장에게 노라는 이 일이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장은 시들시들한 얼굴로 손님들을 상대하는 노라 때문에 매출이 줄어들고 있다며 냉정하게 말을 하고 노라는 일했던 직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설상가상 노라의 하나뿐인 피아노 과외 학생의 부모에게서 과외를 그만두겠다는 통보까지 받게 되어 정말로 백수가 되어 버린 노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노라를 옆집 노인이 불러 세웁니다. 어르신은 노라가 도와주던 약국 심부름과 집 앞 화분에 물을 주는 일을 더 이상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그 일을 대신 도와줄 사람을 찾았으니 그동안 고마웠다는 어르신. 노라는 더 이상 세상이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자살을 결심합니다.
저녁 11시 22분 노라는 짧은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합니다.
"내게는 멋진 삶을 살 기회가 있었지만 난 그 기회를 모두 날려버렸어요. 내 부주의한 행동과 불운 때문에 세상은 내게서 멀어졌죠. 그러니 이제는 내가 세상에서 멀어지는 게 도리예요." 중략
노라가 다시 눈을 떠서 손목의 디지털시계를 본 시간은 00시 00분 00초. 초를 나타내는 숫자가 1로 넘어가기를 기다렸지만 그대로였습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엄청난 양의 책이 있는 거대한 도서관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옛날 학교의 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엘름 부인. 녹색의 스웨터를 입고 자정의 도서관에서 사서로 있는 그녀는 노라에게 이곳은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도서관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죽음으로 갈 수도 다시 삶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중간 지대. 결정은 노라 자신이 할 수 있었습니다. 노라는 엘름 부인에게 더 이상 살고 싶지 않고 죽고 싶다는 말을 합니다.
엘름 부인은 노라에게 차분하게 자정의 도서관은 지금까지 삶을 살면서 내가 하지 않았던 선택을 했던 삶을 살아볼 기회를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많은 책 가운데 노라에게 내민 '후회의 책' 지금까지 살면서 했던 모든 후회들이 담겨있었습니다. 내가 그때 수영을 계속했더라면, 그때 그 남자를 잡았더라면, 그때 그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노라는 중학교 때 그만두었던 수영을 계속했던 삶으로 들어갑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어 전국민의 관심을 받고 TED 강연을 준비하는 운동 스타 노라인 삶, 아빠는 살아있었고 재혼을 했습니다. 오빠는 노라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고 사이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아빠의 바람으로 인해 우울증을 겪다 죽었고 결국 다시 자정의 도서관으로 돌아옵니다. 자정의 도서관은 노라가 여러 삶을 살아볼 수 있었지만 그 삶에 실망을 하거나 더 나은 삶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다시 자정의 도서관으로 돌아옵니다.
팝스타가 되어 전 세계를 누비는 노라, SNS 슈퍼스타가 되어있는 노라, 북극에서 빙하학자가 된 노라, 베드퍼드에서 만난 전 남자친구 댄과 함께 시골에서 펍을 운영하는 노라 등 수백 명의 노라의 삶을 살아본 노라는 결국 애쉬의 아내가 되는 삶을 살아봅니다. 몰리라는 딸과 함께 셋이 행복하게 사는 삶에 온 노라. 노라는 이 삶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다시는 자정의 도서관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지만 결국 자정의 도서관으로 돌아가게 되고 자정의 도서관은 불에 타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노라는 엘름 부인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엘름 부인은 이제 선택의 순간이 왔음을 알려주고 삶과 죽음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노라는 삶을 선택하고 싶다고 했고 엘름 부인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책의 위치와 만년필을 손에 쥐여줍니다. 노라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책에 '나는 살아 있다'라고 적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옵니다.
원래의 삶으로 돌아온 노라는 죽을힘을 다해 기어서 옆집 어르신 댁의 초인종을 누르고 911에 신고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꿈을 위해 사는 노라가 아닌 자신을 위해 사는 노라의 삶을 선택합니다.
자정은 00:00 시다.
모든 것이 끝난 때이기도 하지만
'Tabula Rasa'처럼 어 떤 것이든 가능한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이룰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
구원과 희망의 시간이 바로 자정(Midnight)인 것이다.
그런데 모든 구원이나 희망의 시간이 끝난 절망의 시간이 있다.
'25 시'
허연의 '명저 산책'을 인용한다.
콘스탄틴 게오르규 `25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25시'라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에는 수용소에서 석방된 주인공 모리츠가 가족들과 재회하는 장면이 있다. 카메라를 들이댄 기자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앤서니 퀸의 표정 연기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아내가 독일군에게 추행 당해 낳은 아이를 안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의 표정에는 한 인간의 비극이 그대로 담겨 있다. 잔인한 역사를 견뎌야 했지만, 누구도 미워할 수는 없다는 듯한 그 망연자실한 표정은 분노를 넘어 차라리 아름다웠다. 초월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듯….
역사는 냉혹하게 흘러간다. 인간들이 겪을 상처 같은 건 관심 밖이라는 듯, 역사는 늘 역사 마음대로 흘러간다.
루마니아 작가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1916~1992)의 소설 '25시'는 역사에 철저히 유린당한 소박한 농부의 인생유전을 다룬다. 이 암울한 소설 제목이 왜 '25시'일까. 소설에는 무슨 이유로 제목을 '25시'로 지었는지 암시하는 부분이 나온다.
"25시는 인류의 모든 구원이 끝나버린 시간이라는 뜻이야. 설사 메시아가 다시 강림한다고 해도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는 시간인 거지. 최후의 시간도 아닌, 최후에서 이미 한 시간이 더 지난 시간이지. 서구 사회가 처한 지금 이 순간이 바로 25시야."
스스로 피신과 망명, 수용소 생활을 경험한 작가에게 2차대전을 전후한 서구사회의 모습은 '최후의 시간조차 지나가버린 25시'로 보였으리라.
소설에는 약소국 루마니아의 평범한 농부 요한 모리츠가 등장한다. 그의 인생은 기가 막히고 기구하기 이를 데 없다.
2차대전이 시작되면서 모리츠는 유대인이라는 오해를 받아 강제수용소에 갇힌다. 수용소에 갇혀 있던 그는 천신만고 끝에 헝가리로 탈출하지만 그곳에서는 적성국 루마니아인이라며 모진 고문을 당하고 포로로 감금된다. 포로가 된 모리츠는 독일에 끌려가 전쟁노무자로 일을 한다. 그곳에서 혈통연구가인 독일군 장교 눈에 띈 그는 얼떨결에 게르만족의 순수혈통을 이어받은 사람으로 인정받아 포로 감시병 노릇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모리츠는 기회를 틈타 프랑스군 포로를 데리고 연합국 진영으로 탈출해 영웅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전범으로 분류되어 수용소에 갇힌다. 전쟁이 끝나고 천신만고 끝에 석방되어 가족과 재회하지만 그는 다시 18시간 만에 감금된다. 냉전이 시작되면서 동유럽인들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진 것이다. 이런 식으로 13년에 걸쳐 계속된 모리츠의 유배생활이 소설의 줄거리다. 13년이란 세월 동안 모리츠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접 받지 못한다. 아무도 모리츠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오로지 자기들이 원하는 분류법으로 한 사람의 인권을 유린했다. 그렇게 모리츠는 구원조차 기대할 수 없는 '25시'를 살아야 했던 것이다. 도대체 그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신조차 대답해 줄 수 없는 시간을 그는 살았던 것이다.
루마니아 동부 몰다니아 지방에서 태어난 작가 게오르규는 부쿠레슈시티와 하이델베르크에서 대학생활을 한 뒤 시인으로 등단한다. 파시스트들에게 저항하는 시를 썼던 그는 전쟁이 끝난 후 루마니아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서방으로 망명한다. 그러나 유럽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은 적성국가 국민이라는 이유로 게오르규 부부를 2년 동안 감금한다. 소설 '25시'는 바로 이때 쓰여진 것이다.
1949년 5월 '25시'가 프랑스어로 출간되자 세계는 충격을 받는다. 주인공의 '25시'는 2차대전을 지나온 바로 그들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허연 기자 @heoyeonism(트위터 계정)]
삶의 Reset이 필요하다면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고
그 순간은 자신의 의지로만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의 'reset'이 가능한 시간이
지금(Present)이고
따라서 현재는 선물(Present)인 것이다.
책 내용 중에
은퇴를 하고
아직 앞으로의 길을 찾지 못하고 혼돈 속에 있는
나에게 들려주는 듯한 구절을 인용한다.
물고기도 우울증에 걸린다. 제브라 피시를 상대로 한 실험이었다.
연구팀은 수조 측면, 중간에서 약간 아래쪽에 마커로 수평선을 그렸다.
우울증에 걸린 뮬고기는 그 선 아래쪽에만 머물렀다.
하지만 같은 물고기에게 항우울제 프로작을 먹였더니 선 위로, 아예 수조 맨 위까지 올라가
쌩쌩 돌아다녔다. 마치 새로 태어난듯이.
일단 지금의 삶에 수평선을 긋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항우울제 프로작은 차차 찾아야 하겠다.
수평선을 긋지 않고는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은퇴를 하고 작은 혼란 중에 있는 지금
나는 다시 삶의 오디세이를 떠나기 위해
어디에 나의 수평선을 그을지 고민고민 하고 있는 중이다.
25 시간 아닌 0 시 바로 Midnight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