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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의 산책
가을에 태어난 아이
2022. 12. 9. 19:09
몸살 기운이 거의 사라졌다.
이틀 계속된 안개와 비 때문에 미루었던 산책을 했다.
처음엔 자전거를 타려 했으나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서 포기했다.
boadewalk가 아니라
모래 위를 걸었다.
바다는 저 멀리 멀어져 있었다.
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곳에 물이 나가면
거울 같은 모래 표면에 푸른 하늘이 반사되었다.
평일 오전,
정오 가까운 시간의 바다는
거의 비어 있었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의 발길도
이미 멎었다.
바닷속에는 서핑을 하는 사람 너덧 명이
파도 위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분명 날은 맑은데
해는 구름 속에 갇혀서
묘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걷다가 한 자리에 서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일명 멍 때리기.
파도 소리가 내 귀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내가 나를 잃었다.
바다를 바라보나
바다가 내 안에는 없었다.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왔으나
파도 소리가 내 안에까지 밀려오지는 않았다.
얼마간
나는 나를 바닷가에서
나를 잃었다.
나를 잃어서 얻는 무아의 지경.
새로 도착한 서퍼 하나가
내 곁을 지나며 눈웃음을 건넸다.
무아의 시간이 끝나고
비로소 파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도 그녀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배가 고팠다.
한국을 떠나기 이틀 전부터
나에게 찾아온 몸살기로 어제까지
별 식욕을 느낄 수 없었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라고 한
폴 발레리의 시구절을 살짝 비틀어 본다.
배가 고프다,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