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행 - 치유의 숲
제주여행 - 치유의 숲
1.
비몽사몽 간에 잠을 깼다.
아내는 이미 잠을 깨서 베란다로 나가는 문을 열고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오늘은 서귀포에서 마지막 날인데
치유의 숲을 방문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
베란다로 나왔을 때는 비가 잦아들고
서귀포 바다 위로 햇살이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하늘이 맑지는 않아도
많은 비는 내리지 않을 거라는 아내의 말에 의지해
치유의 숲으로 향했다.
호텔에서 차로 6 분 거리에 치유의 숲이 있었다.
하루에 600 명으로 출입 인원을 제한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이미 예약을 끝낸 상태였다.
그러나 오늘 같은 날은 예약 상관없이
원하면 입장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이 적은 덕에 아주 오붓한 숲길을 산책할 수 있었다.
새벽에 세차게 내린 비 때문에
땅에는 가끔씩 동백꽃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축축하고 어두운 나무 밑에 떨어진 동백꽃은
마치 어둠 속에 빛나는 등불 같았다.
땅에 떨어진 동백을 보고
나무 위를 올려다 보면
동백꽃 한 두 개가 수줍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
도시에 조경수로 심은 동백꽃은
꽃 이파리가 낱개로 떨어지는데
숲 속에 핀 동백은 꽃 전체가 떨어진다.
낱개로 떨어지는 꽃 이파리들은
별 무게감 없이 하늘거리며 지상으로 내려온다.
그런데 숲 속에 핀 동백은
전체가 떨어진다.
툭 소리를 내며 땅 위에 오체투지를 한다.
동백은 땅으로 떨어지며
전신으로 참회를 한다.
지상에 닿는 순간,
열반에 드는 동백꽃.
비 내린 어둔 숲 속에서
오늘 아침 부처를 만났다.
2.
제주에 와서 삼나무와 인연을 맺었다.
삼나무는 보통 숲을 이룬다.
처음 빽빽한 삼나무 숲에 들어섰을 때
답답하다는 느낌이 우세했다.
우뚝우뚝 솟은 삼나무 숲은 어둡다.
그런데 삼나무 숲과 몇 차례 만나고 나니
이제는 삼나무 숲에 들면
편안한 느낌을 갖게 된다
삼나무 숲에 발을 디디면
몸이 서늘해진다.
그리고 거짓말 같이 눈이 밝아지는 것 같다.
흐릿한 내 눈이 용맹 정진하는 납자처럼 푸르러지는 것 같다.
바다에 가면 마음이 넓어지는 것처럼
삼나무 숲에 들 때면
마음이 길고도 높아지는 것 같다.
어두움 속에서 눈이 밝아지는 모순을
나는 삼나무 숲 속에서 경험한다.
죽비로 어깨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살아 있음을,
살아가야 함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