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제주살이 - 쓸데없는 이야기 3

가을에 태어난 아이 2022. 11. 15. 19:33

제주살이 - 쓸데없는 이야기 3

15 일 동안의 제주시 생활을 마무리하고

오늘 서귀포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우리가 머물던 호텔 주변의 지리가 제법 익숙해질 때쯤 되니

떠날 시간이 된 것이다.

15 일을 머물다 보니 호텔 주변을 제법 돌아다녔다.

한 끼 해결을 위해서,

그리고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

아니면 버스를 타기 위해서 

호텔을 중심으로 반경 1-2 km는 제법 걸어 다닌 것 같다.

 

제일 기억에 남는 장소는 삼무공원이다.

밤에 호텔을 찾아 돌아올 때

버스정류장에 내려 길이 헷갈리면

사람들에게 삼무공원 가는 길을 물어보면 아주 쉽게 찾아올 수 있다.

간단한 운동시설도 되어 있고

공원 올레길도 잘 형성되어 있어서 동네 사람들이 애용하는 곳이다.

여러모로 우리가 머무는 동안 삼무공원은

우리와 정이 들었다.

 

말하자면 삼무공원은

우리의 북극성이었다.

길이름이 어색한 우리에게 삼무공원은

길을 안내하는 별자리와 같았다.

커피집을 찾아갈 때도 삼무공원은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삼무공원 시계가 있는 계단을 내려가 조금 가다 보면

큰길을 만나는데 거기 커피 집이 있었다.

 

삼무공원을 돌아나가

또 큰길을 만나는데

한림 쪽으로 갈 때 타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그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에

'어머니 빵집'이 있는데

우리는 거기서 세 번 빵을 사서 먹었다.

 

아내와 나 모두 빵을 좋아하기에

빵을 사 먹는 데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배가 불러도 빵을 보면 꾸역꾸역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아내가 어느 날 아침에 '어머니 빵집'에서 빵을 사 왔다.

팝콘을 담는 종이 통 같은 것에 빵을 구웠는데

쌀빵이라고 아내가 설명을 해주었다.

카스텔라 맛이 나는 빵이었는데

부드러움과 쫄깃함이 어우러진 맛이 정말 좋았다.

그리고 두어 가지 더 사 왔는데

모두 맛이 있었다.

 

며칠 전에는 올래 16 길을 가려고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 정류장 앞에는 언제나처럼 빵집이 있었다.

빵집은 우리에게는 '참새의 방앗간'이다.

 

아내는 나에게 눈짓을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에서 아침마다 제공하는 샌드위치를 먹고 출발했지만

빵 앞에서 약간의 배부름은 어떤 장애도 되지 않았다.

 

감자 모양의 빵 하나,

고구마 모양의 빵 하나,

그리고 찹쌀 꽈배기 하나를 사서

커피와 함께 먹었다.

 

고구마 빵과 감자 빵은 

실제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내용물도 감자와 고구마가가 차지하고 있었다.

 

빵 만드는 기술에 감탄을 하며

빵을 먹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려고 빵집을 나왔다.

그런데 정류장 이름이 '어머니 빵집'이었다.

사실 '어머니 빵집'의 본점은 다른 곳에 있는데

처음 영업을 시작한 것이 1980 년대였다.

 

거의 30 년을 이어온 빵집,

그것도 내 입맛에 맞는 빵을 만들어 온 시간 동안

'어머니 빵집'이라는 이름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아름다운 맛과 향기로 숙성되어가지 않았을까?

 

'연동 입구', '월령 3리' 같은

수많은 버스 정류장 이름 중,

'어머니 빵집' 정류장도 당당히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썩어가는 것도 있고,

익어가는 것도 있다.

 

 

내 등 뒤에 남은 65년의 삶,

그리고 내 앞에 놓인 삶.

 

썩어가고 있을까,

아니면 익어가고 있을까.

 

어머니 빵집 앞에 있는

어머니 빵집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빵집에서 흘러나온 빵 굽는 향기가

내 코 끝에서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