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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별오름, 이시도르 목장

가을에 태어난 아이 2022. 11. 8. 03:42

새별오름, 이시도르 목장

1.

새별오름에 올랐다.

 

그리고 이시도르 목장에 다녀왔다.

이시도르 목장은 임피제 신부가 설립했는데

그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성 골롬반 회 사제로 서품 되어

한국에 파견되었다고 한다.

 

피폐한 한국, 

그것도 제주에서

사람들을 위해 목장을 만들었고

방직공장을 세웠다.

 

고향 아일랜드를 떠나

한평생을 한국에서 제주도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다

이시도르 목장에서 영면하고 있다.

 

목장 곳곳에 민들레가 피어 있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이 만들어낼 

또 다른 삶.

 

하늘엔 구름이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2.

이시도르 목장 안에서 무덤 하나를 만났다.

제주에서 이렇게 무덤 가까이 간 것은 처음이다.

 

무덤은 돌담장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제주 사람들은 무덤도

죽은 뒤 머무르는 집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사방이 막힌 장 한쪽에

비밀 통로 같은 작은 구멍이 나 있다.

 

죽은 사람이 세상 밖으로 나다니기 위함이라고 들었다.

 

사람은 죽어서 아주 작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보다.

키 작은 담장을 훌쩍 넘어가지도 못하고

작은 구멍을 지나야 바깥세상으로 자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비밀 통로는

아무래도 망자를 위한 것이기보다는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 비밀 통로를 만들었으니

아무래도 비밀통로는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이 담긴 구조물일 것이다.

 

죽은 이가 산 사람을 그리워할까?

그건 내 경험 밖의 문제다.

확실한 건 산 사람을 죽은 이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증오하기도 하는 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제주 무덤의 비밀통로는

산 자의 슬픔과 그리움이 죽은 이에게 닿을 수 있는

비밀통로인 것이다.

 

아, 절절한 그림움이여.

 

3.

새별오름에 도착하는데 어려움을 겼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몇 정류장 전에서 내렸기 문이다.

 

운전면허 시험장 다음 정류장에서 잘못 내린 것이 화근이었다.

운전기사나 다른 승객에게 물어보았으면 될 것을

제대로 터지지 않는 아내 전화기가 알려주는 정보에

반신반의하며 무작정 내린 것이 잘못이었다.

아내는 전화기를 들여다보며

거기서 새별오름까지 걸어가도 될 것 같다고 주장(?)하였으나

나는 강력히 반발하였다.

(이런 일은 거의 없다. 승률 99%가 되어야 비로소 꺼내는 카드다.)

 

우리가 내린 정류장 앞으로는 한 사람도 지나다니지 않았다.

차들의 통행도 거의 없었다.

정류장 버스 노선도에도 새별오름 정류장이 보이지 않았다.

같은 번호의 다음 버스는 어찌 된 영문인지

이 정류장에는 서지 않는 것 같았다.

얼마나 긴 시간을 거기서 멍하니 서 있어야 할지 몰랐다.

 

우리는 우리가 내린 바로 전 정류장까지 걸어서 갔다.

아무래도 운전면허 시험장이 있는 곳이니

현지 사람들에게 우리가 갈 곳에 대해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날씨도 쾌적했고

길 옆 수풀이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가

걷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마침 거기 있던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았다.

그곳 정류장의 버스 노선도에도

새별오름 정류장의 이름은 눈에 띄지 않았다.

우리에게 길을 알려준 사람은 분명히

새별오름 정류장이 있다고 하며 우리에게 확신을 주었다.

 

버스가 오자 우리는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짧지 않은 거리를 달려

우리는 새별 오름 정류장에 내릴 수 있었다.

 

아내가 걸어가도 된다고 했던

정류장에서 새벽 오름 정류장까지의 거리는

걷기엔 무리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물론 걸어서 갈 수는 있었지만

걸어서 갔다면 우리는 버스를 타고 호텔까지 되돌아왔어야 했을 것이다.

 

나는 점점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기술문명을 따라잡는데 숨이 차다.

특별히 관공서와 문제 해결을 위해

인터넷으로 무언가를 해야 할 때

짜증 나고 답답하다.

옛날에 얼마간 기다려도 사람과 전화를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발전한 기술 앞에 무릎을 꿇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기술발전에 따라가지 못한 이의 넋두리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것이 가져다주는 편리함보다도

나는 아날로그의 불편함이 좋다.

 

이 모든 것이 '여우의 신포도(Sour Grap)'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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