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환이와 함께
신환이와 함께
어제는 신환이와 시간을 보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보는 것이니
46 년도 훌쩍 넘은 시간이 흐른 것이지요.
신환이는 몸소 점심상을 차려 주었습니다.
큼지막한 민어 한 마리도 구워서 말이지요.
사실 나는 생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입맛에 맞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발려먹기 귀찮아서입니다.
그런데 나같이 게으른 사람도 세상 살기 마련입니다.
집에서는 아내가 생선 가시를 발려줍니다.
어제는 신환이가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생선 가시를 발려주어서
아주 맛나게 민어를 밥 위에 얹어 먹었습니다.
나 혼자 잘나서 사는 것 같지만
누군가의 도움과 배려로 살고 있음을 다시 느꼈습니다.
신환이가 살고 있는 집에서 제주도 서쪽 끝까지
내가 신환이 차를 운전해서 다녀왔습니다.
도로 표지판에 익숙지 않은 내게 신환이는 운전 교습 선생님 역할도 해주었습니다.
어느 관광 가이드보다 훌륭한 지식과 마음으로
내게 방문지와 제주 요모조모를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제주의 지명이 머릿속에 잘 입력이 되질 않았습니다.
용을 써서 외운다고 외웠지만
오늘 아침 기억을 꺼내보니 차귀도, 비양도, 수월봉,--정도였습니다.
김대건 신부가 표류해서 도착한 곳에 성당과 기념관이 있었는데
그만 이름을 까먹었습니다.
정말 물빛이 고운 비치 이름도 잊어버리고----
그러나 물빛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함께 다니며 간간이 신환이는
고운 음성으로 노래도 불렀습니다.
신환이의 목소리는 남빛 바닷물이 먹여져 있는 천처럼
선명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수월봉에서 신환이가 사 준 오징어 구이를 먹었습니다.
이젠 이 때문에 오징어와의 교류를 끊은지도 5-6년이나 되었습니다.
오징어는 여전히 맛이 있었습니다.
신환이를 보지 않고 지난 46 년 세월.
씹을수록 맛이 깊어지는 오징어처럼
앞으로 신환이와의 시간도 그렇게 맛이 깊어질 것 같습니다.
수월봉에 오르자 시차 때문인지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신환이 집에서, 아니 신환이 집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
우리는 아주 편안한 작별을 했습니다.
졸음이 몰려왔습니다.
깜빡빰빡 졸면서 내가 머무는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버스의 창 밖은 이미 밤이었습니다.
졸음과 잠 사이 어디선가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남빛 바닷물, 그리고 신환이의 노래가 들리는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나는 가끔씩
쪽빛 바다에서 들리는 신환이의 노래를 들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사족; 내 주 카메라의 배터리를 가지고 가지 않아서
백업 용으로 들고 다니는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이
별로 마음에 차진 않아도
우리의 여정을 조금은 보여줄 수 있어서 공개합니다.